행복과 불안 그리고 믿음: 살아내기.
가슴 가득 행복감이 차오를 때마다 곧 사그라들 그것의 끝을 예감하며 애수에 잠기는 건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보고, 또 그러면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 그리고 행복한 순간이 갖는 유한함과 인간의 한계에 대해 알게 된 사람만이 경험하는 이중적인 감정일 것이다. 가장 빛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나지막이 찾아드는 불안과 두려움. 인간이라면 짊어져야 할 숙명일 것이다.
어쩌면 인생은 그런 찰나의 순간을 잃고 싶지 않다는 본능과 그 순간을 영원이란 시간으로 확장시키고 싶어 하는 욕망과의 싸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을 원하지만 그것의 유한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며 허무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 시간이 지나며 사그라든 행복의 흔적들, 빛이 어두움에 남긴 자취들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와 소망을 잃지 않고 어두운 시간을 낮은 자세로 견뎌내는 사람. 살아온 대로 습관대로 사는 삶이 아닌 마침내 일상을 살아내는 눈이 깊은 사람.
한계를 안다는 건 지혜의 시작일 뿐이다. 지혜가 만발하게 되는 순간은 그 이후에 찾아온다. 참 지혜는 관념으로 머물지 않는다. 언제나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실체를 가진다. 감사와 소망, 그리고 믿음과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고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지혜는 유한함을 간신히 파악했으나 결국 그것의 권세에 굴복하고 마는 지혜다. 필요한 건 초월이다. 무한을 향한 초월. 아이러니하게도 무한함의 시작은 유한함이다. 그리고 이성과 경험으로 파악한 유한함을 무한함으로 승화시키는 힘은 믿음이다. 우리의 살아냄의 근거인 믿음. 이성을 배제한 믿음이 아닌 그것에 기반한 믿음. 믿음 없이 이성만으로는 살아낼 수 없다. 초월은커녕 허무와 독단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초월한다는 것은 살아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