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인디애나로 이사 오고 부랴부랴 한 학기를 끝내고 더워질 즈음이었으니 아들은 1학년에 올라갈 참이었다. 그때 사준 책가방을 아들 녀석은 거의 7년 간 잘도 메고 다녔다.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큰 게 좋아,라고 말하던 녀석. 새 학년이 시작될 때 1학년생을 대상으로 광고하는 상품들은 한결같이 작고 귀여운 책가방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작다고. 주머니가 별로 없다고. 제 또래의 아이들 평균 키보다도 작았던 아들 녀석의 고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어른이 들고 다니는 가방을 샀다. 랩탑을 넣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도 있고, 휴대용 물병을 꽂을 수 있는 공간도 가방 옆에 붙어있고, 지퍼가 여러 개 달려있어 공간 활용을 효율적을 할 수 있게 제작된 성인용 가방이었다. 아마 그 가방 만든 사람은 감히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들고 다닐 게 거의 없는 데다 평균 키에 한참 못 미치는 1학년 꼬마가 매일 학교에 그 가방을 들고 다닐 줄은.
이틀 전 아들을 픽업할 때였다. 날 보자마자 가방 끈이 끊어졌다고, 그래서 자기가 매듭을 지어 임시방편으로 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잖아도 몇 달 전 7학년을 시작할 때 오래된 가방이 마음에 걸려 하나 새로 사줄까, 하고 물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했었다. 자기는 그 가방이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그 가방에 드디어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이미 닳고 닳아 해진 부분도 있고, 빨아도 깨끗해지지 않은 부분도 있었으며, 어딘가에 긁혀서 작게 구멍 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끈이 삭아 완전히 끊어진 것이었다.
당일 집에 오자마자 오랜 기간 동안 잘 사용한 기념으로 새 가방을 하나 구입했다. 구입하기 전 아들이 강조했다. 똑같은 브랜드로 사자고. 그래서 인터넷으로 쇼핑을 했다. 나는 전혀 모르는 브랜드였는데 알고 보니 가방 전문 브랜드였다. 그리고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비슷한 가방이 있는 것이었다. 아들은 쾌재를 부르며 이거 이거, 했고 나는 꼼꼼히 살펴본 뒤 결제를 실행했다. 다시 봐도 for kids 가 아니라 for men 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행과 출장을 자주 가는 성인들을 위한 가방이었다.
오늘 가방이 배달됐다. 흥분한 채 포장을 뜯자마자 아들은 너무 좋아했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만져보고 뒤집어보며 혼자서 뭐라 뭐라 종알대다가 곧바로 조용해지더니 옛 가방에서 새 가방으로 모든 물건들을 옮기는 작업에 돌입했다. 너무도 진지한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웃음이 났다. 작업을 다 마치시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아들이 물었다. 이건 어떻게 해? 그냥 버리자. 그동안 잘 사용했어. 잘 가. 안녕. 아들은 망설임이 없었다. 미련도 없었다. 곧바로 새 가방에 기뻐했다.
아들에게 굿 나이트 키스를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에 저렇게 온 맘 다해 기뻐한 적이 언제였던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부러웠다. 그 생기발랄한 모습. 경이감에 찬 채 감동하는 모습. 문득 나도 아이의 마음을 다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은 이제 저 가방을 애지중지하며 한동안 사용하게 될 것이다. 마음껏 사용하렴. 아빠가 그 가방 문제 생기면 더 좋은 걸로 사줄게. 고마워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