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일시성과 영원성: 작가와 독자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썼던 글은 한동안 읽지 않게 된다. 시간을 많이 투자한 글일수록 더 그렇다. 초고와 퇴고 사이에는 얼마나 많이 반복해서 읽는지 모른다. 퇴고를 끝낸 후 완성이 되었다고 생각한 글에는 더 이상 눈이 가지 않는다.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다. 공을 들인 만큼 애착이 강할 것 같은데, 그래서 계속 옆에 두고 읽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내가 쓴 두 권의 책도 출간된 이후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다. 누가 보면 기피한다고 여길지도 모를 만큼. 왜일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글은 일시성을 가지는 것 같다. 한 편의 글과 함께 보낸 시간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물론 글과 글쓴이 (작가) 관계에 국한된 말이겠지만 말이다. 완성된 글은 뭐랄까, 계약이 끝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미 나와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역량은 글이 완성될 때까지만이 아닐까 싶다. 완성된 글은 작가의 권한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물론 저작권 같은 법적인 측면은 고려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다 싶지만,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애정이 이토록 한 순간에 차갑게 식어버릴 줄은 미처 몰랐고,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나는 신기해한다.
한편, 글은 영원성도 가진다. 이 영원성은 글과 작가 관계를 벗어나 독자와의 만남이 필수다. 수백 년 전에 쓰인 글이 지금도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되고 읽히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글의 영원성을 증명하는 명징한 증거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와 독자의 위상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독자의 위상을 나는 꽤나 수동적인 의미로 이해해왔던 것 같다. 작가의 작품을 그저 읽는 존재 정도로만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글의 일시성과 영원성을 함께 놓고 생각해보니, 독자의 역할이 작가의 역할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일시성과 달리 영원성은 불멸의 힘을 가지기에 글의 생명력은 곧 독자의 개입이 핵심인 것이다. 반면, 작가는 그저 쓸 뿐이다. 글이 완성되기까지 말이다. 글이 완성되면 작가는 작가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독자의 자리로 회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즉, 작가는 일시적으로 독자의 자리를 벗어나 글을 쓰는 순간을 보내며 글을 완성하고, 완성되면 다시 독자의 자리로 와 다른 작가의 글을 읽고 그 글의 영원성에 기여를 하는 것이다. 일시성은 영원성을 낳는 기초가 되고, 영원성은 일시성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작가는 일시적이고 독자는 영원한 것이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어주는 일은 정말 감사한 일임에 틀림없다.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