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힘

by 김영웅

작가의 힘


좋은 책을 계속해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깨달음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실한 기다림이 무용하고 미련하게 보이는 이유 역시 기다림이 언제나 가시적인 열매로 이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깨달음은 자주 깨달음만으로 끝나고, 기다림은 기다림만으로 끝날 때가 많기 때문에 성실한 지속은 왠지 모를 죄책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평생 이룰 수 없는 이상에 머물기 쉬운 것 같다.


그동안 글쓰기 책을 열댓 권은 족히 훑어보거나 읽었을 것이다. 처음엔 내가 전혀 모르던 내용을 알려주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실수하던 부분을 족집게처럼 짚어주기도 해서 집중하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두어 권 그렇게 읽은 후엔 똑같은 말의 반복과 변주로 여겨져 어느 순간부터는 그 책들이 마음에 담기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읽고 있는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라는 책은 당황스러우리만큼 진지하게 잘 읽힌다. 처음 보는 내용이냐? 아니다. 역시 반복과 변주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책이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을까?


두 가지 이유가 가능하다. 첫째, 워낙 오랜만에 글쓰기 책을 들여다봤기 때문일 가능성. 둘째, 저자의 글쓰기가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을 가능성. 마지막으로 내 돈 주고 사서 읽었던 글쓰기 책이 아마도 유시민 혹은 강원국이 쓴 책이었을 텐데, 따지고 보면 벌써 거의 6년 전이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다시 읽고 환기하기엔 충분한 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난 두 번째 이유가 첫 번째보다 더 유력하다고 믿는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의 글쓰기가, 비록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쨌거나 내 주의를 집중시키고 계속 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게 작가의 힘이라고 믿는다.


작가의 힘은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이다. 객관적이라 함은 기본적인 글쓰기 기술을 익혀 누가 읽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문장과 단락을 구사하여 한 편의 글을 만들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안정효는 글쓰기와 번역을 가르친 선생이기도 하기에 이러한 객관성은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주관성이다. 문체라고 하기엔 너무 의미가 희석되고 두루뭉술해지는 것 같아 성에 차진 않지만, 나에겐 문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문장력과 필력이 객관성에 해당된다고 할 때, 문체는 주관성에 해당하는 항목인데, 읽기와 쓰기를 거듭할수록 문장력이나 필력보다는 문체에 내가 더 많이 끌린다는 점도 안정효의 이 책이 내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글쓰기 방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안정효의 글쓰기를 배우고 있는 셈이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을 이루고 있는 문장과 단락, 그리고 그 사이 여백을 채우는 작가의 문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과거에 읽었던, 이 책에도 적힌 반복되는 글쓰기 기술이 작가의 문체 때문인지 새롭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괜스레 내가 썼던 글을 들춰보기도 하고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요령 혹은 규칙에 어긋나지 않나 싶어 세밀하게 살펴보게 된다. 재방문으로 인한 깨달음의 순간을 비로소 내가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사 분의 일 정도 읽었다. 마치 몰랐던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마치 글쓰기를 배우던 초창기의 나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살짝 들뜨기도 한다. 덕분에 나의 글쓰기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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