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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Dec 27. 2022

보이지 않는 선

보이지 않는 선


나도 많이 놀았어, 나도 게을렀었어, 하며 자신의 과거를 일부러 부정적으로 채색하여 현재 자신의 겸손을 드러내는 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성취한 성공을 자수성가의 일환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안다. 해병대도 힘들지만 방위도 힘들다는 걸. 타자의 힘듦을 함부로 저울에 올려놓고 경중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건은 힘들었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게 아니다. 왜 스스로 자수성가의 신화 속으로 숨으려 하는가, 이다.


자수성가는 자랑스러운 것일까, 부끄러운 것일까.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게 과연 부끄러운 일일까. 내가 무능하다는 증거일까. 오히려 사실에 가까운, 그래서 오히려 더욱 겸손한 고백이 아닐까. 자신의 거짓 겸손을 드러낼 때 타자는 배제된다. 과거에 놀고도 게으르고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건 놀아도 게을러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던 자신의 안락한 환경을 자랑하는 꼴일 뿐이다. 세상에 혼자서 이루어내는 건 거의 없다. 공저자가 많다고 해서 첫 저자의 크레딧이 사라지지 않는다. 자수성가는 신화일 뿐이다. 타자가 완벽히 배제된 독불장군의 원맨쇼일 뿐이다.


반대로 열심히 공부만 혹은 일만 해서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고 떠벌리며 자신이 이룬 성공을 공정한 결과라고 믿는 사람 또한 착각 속에 빠져있는 건 마찬가지다. 생계에 아무런 지장 없이 혹은 큰 걱정 안 해도 되는 심리적 안정 속에서 열심히 한 우물만 팔 수 있었던 자신의 안정적인 환경을 암묵적으로 묵인한 채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 빠진, 눈이 짧고 생각이 짧은, 그러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신의 모든 성공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채색하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일 뿐이다.


모순, 이율배반. 언젠가부터 인간의 본성을 떠올릴 때 언제나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이다. 내가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겸손과 교만, 공평과 차별. 정반대에 위치한 듯하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의외로 가까워서 하나인지 둘인지조차 헷갈릴 정도인 현실이다. 가장 어려운 건 인간관계라고 했던가. 원만하다는 것, 처세술에 능하다는 것, 프로페셔널하다는 것. 보이지 않는 선 위를 그러나 나는 오늘도 또 수없이 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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