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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Nov 22. 2023

푸시킨의 옷을 입은 도스토옙스키의 구전동화 같은 작품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읽고

푸시킨의 옷을 입은 도스토옙스키의 구전동화 같은 작품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을 읽고


감상문 (특히 문학 작품에 대한)을 남길 때 나는 작품의 제목을 할 수 있는 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저자 (혹은 출판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실패다. ‘결혼식’은 쉽게 이해가 되는데 작품을 다 읽어도 왜 크리스마스나 송년회가 아닌 ‘크리스마스 트리’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별 뜻 없이 도스토옙스키는 연말이라는 시기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했겠거니 하며 넘어가려 한다 (재독 하면 혹시 알게 될까? 내가 이 작품을 다시 읽긴 할까?).


내러티브에서는 도스토옙스키보다 푸시킨이 더 많이 느껴진다. 여태껏 읽어왔던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에 비해 평면적이다. 구전동화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 짧지만 웃지 못할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내가 아는 전형적인 도스토옙스키가 느껴지는 부분은 소설 초반 작중 화자의 캐릭터를 묘사할 때 (병적으로 외톨이인 듯한 캐릭터는 꽤나 익숙하다), 그리고 결혼식 신랑 율리안 마스따꼬비치의 5년 전 모습을 묘사할 때라고 할 수 있겠다. 나머지는 죄다 푸시킨인 것만 같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되는 열여섯 살 소녀, 그리고 그녀의 부모가 가진 재력을 미리 알고 5년 전 한 어린이 무도회에서 열한 살이었던 그녀를 미리 점찍어 두고 결국 자기 신부로 만들어버리는 교활한 기회주의자 율리안 마스따꼬비치. 이 둘의 5년 전과 후의 모습을 모두 알고 우연히 어떤 교회 옆을 지나가다가 두 사람의 결혼식을 보게 되는 일인칭 관찰자 시점의 작중 화자. 이것이 이 작품의 전부인 것만 같은 이 기괴한 기분.


열린책들 판으로 14 페이지 밖에 안 되기 때문이리라. 무언가 도스토옙스키다운 면모를 보여주기에는 너무도 짧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초기작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는 꿋꿋하게 나머지 작품들도 읽어나가리라.


* 도스토옙스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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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정직한 도둑: https://rtmodel.tistory.com/1703

27.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https://rtmodel.tistory.com/1704


*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1.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690

2.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696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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