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도스토옙스키의 해학이 녹아있는 작품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을 읽고
‘참 나, 어이가 없군. 이게 뭐래?’ 이 작품을 읽은 후 나의 첫 반응이다. 아니, 사실 읽는 중에도 그랬다. 이렇게 감상문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도스토옙스키’라는 장르 (내가 정의한 새로운 장르)에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다. 아무래도 단편소설이라 그런지 이렇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더 강렬한 것 같다. 입을 쩍 벌리면서 읽다가 (뭥미?) 미처 다물지 못한 채 작품이 끝나버렸다. 뒤늦게 입을 다물고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어하는 내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제목만 보면 이 작품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전혀 와닿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작품을 다 읽은 후 다시 제목을 보고 어떤 숨겨진 의미나 특별한 의도가 전혀 없다는 걸 알았다.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론 허탈했다.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더 특별하게 여겨질 때가 있지 않은가. 제목은 어쩌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처한 우리의 주인공 이반 안드레비치의 모습을 그저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뿐이었다. 제목은 아무 죄가 없었다. 줄거리가 범인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줄거리인가? 한 마디로 의처증 남편의 코미디 같은 에피소드이다. 아니, 의처증이라고만 하면 모자라다. 의처증이면서 자존감은 바닥인 데다 자존심은 높아 횡설수설하고 경박하게 굴면서도 고상한 척하는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작품 속에서도 강조되는 한 단어 ‘질투’가 많은 인간이라고 하면 주인공을 얼추 잘 소개하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로,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 속에서 질투를 ‘가장 큰 열정’, ‘용서할 수 없는 열정’, 그리고 ‘불행’이라고 묘사한다.
이 작품은 두 파트로 구성된다. 두 파트의 주인공은 동일 인물이지만 독립적으로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제목이 묘사하는 장면은 두 번째 파트에 등장한다 (여기선 두 번째 파트에 대해서만 다루기로 한다). 의처증에 빠진 이반 안드레비치는 아내의 뒤꽁무니를 쫓는다. 음악 공연이 열리는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까지 쫓아간 그가 앉은 자리는 하필 아내의 좌석 바로 아래였다. 도저히 아내를 관찰할 수 없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벗겨진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진다. 꼬깃꼬깃 접힌 편지였다. 뭐의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던가. 우리의 주인공은 그 편지가 사랑, 그러니까 불륜의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는 운명을 느꼈다 (여기서 도스토옙스키는 ‘총알이 스스로 죄인을 찾는다’는 표현을 쓴다. 기가 막힌 표현이다). 홀 밖으로 뛰쳐나와 불빛 아래 서서 편지를 읽었다. “오늘, 공연이 끝난 뒤에, G 거리 ** 골목에 있는 건물 3층, 계단 오른쪽 집으로 와주세요. 문은 1층 입구 쪽에 있습니다. 제발 실수 없이 와주세요.” 의심할 여지없이 불륜의 현장이었다.
이반 안드레비치는 딱 여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도스토옙스키가 창조해 낸 인물 아닌가. 이반은 멈추지 않고 ‘설마’ 하는 독자의 염려의 한계를 사뿐히 넘어 버린다. 그는 그 불륜의 현장으로 직접 찾아간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반 안드레비치가 들이닥친 방은 3층이 아니라 2층이었다. 끔찍한 실수를 범한 것이다. 아니, 이를 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편지에 쓰인 대로 3층으로 찾아갔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었을까?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현장으로 무작정 찾아간 그 자체가 실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반 안드레비치가 들이닥친 2층집 침실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갑자기 침실로 침입한 전혀 모르는 남자를 맞이한 여자의 표정이 어떨지 떠올려보라. 그 여자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마침 그 순간 남편이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이반이 고작 발휘할 수 있는 재치라고는 침대 밑에 숨는 것이었다. 제목이 묘사하는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다.
여기서 도스토옙스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역시 도스토옙스키답다. 놀랍게도 침대 밑에는 다른 남자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역시 3층인 줄 알고 실수로 잘못 침실을 찾은 것이었다. 이럴 수가! 여자의 늙은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잘 준비를 하는데 침대 밑에서 두 남자가 티격태격 대는 소리를 어렴풋이 듣고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의아해한다. 그때 그 집에서 기르는 개가 등장하고, 그 개는 외부인의 냄새를 맡고 본능적으로 침대 밑을 습격한다. 하필 이반 안드레비치 코를 문 그 개는 이반의 방어 본능에 의하여 질식사를 하게 된다. 침대 위의 남의 아내는 경악하고 남편에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이반을 힐문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의 주인공 이반 안드레비치는 자기가 도둑이 아님을, 오히려 존경받을 만한 고상한 사람이지만 어쩌다 실수로 이렇게 된 것뿐이라고 변명하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게 우스웠는지 주인집 부부는 이반이 도둑이라는 의심을 거두게 된다. 자초지종을 듣고 얼른 3층올 가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이반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모면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엔 아내가 의사의 진찰을 받고 이미 쉬고 있었다.
이반은 과연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는 아내의 불륜을 막으려고 했던 걸까? 불륜의 현장을 덮치려고 했던 걸까? 혹시 아내의 불륜을 바라는 건 아니었을까?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 작품 역시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이야기이지 않을 수 없다. 해학으로 보이지만 단순히 해학으로만 읽어서는 왠지 안 될 것 같은 기분. 기발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현대문학에서 보이는 기발함과는 차원이 다른 기발함에 나는 다시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작품을 읽으며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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