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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Mar 24. 2024

청출어람

청출어람


모든 선생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보다 잘하는 제자를 키워내고, 그 제자와 친구로 지내기 시작하는 것. 


직장 동료에게 탁구를 기초부터 일 년 반 정도 가르쳤다. 저번 주부터 나를 이기기 시작했다. 나와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이른바 MZ 세대. 내가 대학 입학할 때 태어난 청년.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지기 시작하니 낯선 기분이 들었다. 이기는 게 익숙해지고, 가르치는 게 익숙해지면 정말 큰 일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선생의 자리에 있을수록 무언가를 배우는 제자의 자리를 함께 유지하는 게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분야를 잘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분야를 잘한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도 그 권위를 유지할 수 없다. 가르칠 때나 배울 때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겸손이다. 상대방을 향한 존중. 인간으로서 동등하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 무언가를 잘하는 건 일시적이라는 것. 가르칠 때나 배울 때나 섬기는 자세로 임할 것. 청출어람을 경험하는 이 기쁨을 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 탁구에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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