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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Oct 26. 2024

병렬독서 vs. 한권독서

병렬독서 vs. 한권독서


나는 '한 우물 파기'의 신화를 믿지 않는다. 만약 그 말이 다양성을 배제하는 뜻으로 쓰인다면 말이다. 오히려 나는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여러 우물을 파는 시도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들보다 높고 빠른 삶이 아닌 풍성한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우물 파기'를 이렇게 받아들인다. 자신이 선택한 한 우물을 팔 땐 선택하지 않은 다른 우물을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고 집중해서 그 우물을 파야 한다고. 전체가 아닌 부분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건 우리가 유한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어차피 몸이 하나이자 손이 두 개인 우리는 여러 우물을 동시에 팔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내게 '한 우물 파기'는 여러 우물을 파는 시도를 하면서 그중 어느 한 우물을 선택해서 팔 땐 집중해서 파라는 지침과도 같다. 


병렬독서니 한권독서니 하는 몇몇 글을 읽었다. 병렬독서의 장단점, 한권독서의 장단점이 납득이 될 만한 수준으로 잘 기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글도 현실적인 인간의 한계를 반영하지 못한 채 다분히 추상적인 내용으로만 쓰여 있었다. 알다시피 인간은,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사람이 되며 다양하고 다채로운 기분에 휩싸이는 존재다. 책만 생각할 게 아니라, 책의 가치 혹은 효율적인 책 읽기만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책을 읽는 독자가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병렬독서를 무생물인 바위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생물인 인간이 바로 독자라는 점에 기반하여 변명하는 글로 읽힐 수도 있겠다.  


위에 언급한 '한 우물 파기'를 나는 이 두 가지 독서 방법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관적인 견해이기 때문에 이 글은 결코 지침 같은 건 될 수 없다. 얼마 전에 포스팅한 것처럼 나는 아침, 밤, 기다리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에 따라 다른 책을 손에 들고 읽는다. 왜 그런가.


아무래도 이성보다는 감성이 충만한 밤 시간에 나 같은 경우는 냉철한 지식을 요하는 논문이나 철학, 인문, 신학 책을 읽게 되면 내용을 소화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잠드는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러나 아침에 똑같은 글을 읽으면 어젯밤엔 이것을 이해하는 데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쉽게 소화하는 경험을 자주 한다. 이런 경험 이후 특별한 일 (마감이나 시험 등)이 아닌 이상 나는 밤엔 초집중을 해야 하는 책은 가급적 피한다. 


한편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이동 중에는 에세이를 주로 읽는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에 방해를 받기 쉽고, 그에 따라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책보다는 누군가가 해 주는 일상적인 말을 공감하며 듣는 자세로 읽을 수 있는 책이 내겐 바로 에세이인 것이다. 만약 이 시간에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나눌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읽게 된다고 생각하면 난처해질 따름이다. 또한 500페이지 이상의 두꺼운 책들을 들고 다니며 이동 중에 읽기에는 부담스럽다. 마음도 무겁고 몸도 무거워진다. 독서는 일차적으로 즐거워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책을 읽게 되면 일이 된다. 무엇보다 나는 굳이 이 시간에 그런 책을 읽을 필요가 있겠는가 싶은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 이제 내 나름대로의 '한 우물 파기'를 적용해 보자. 여러 장르, 다양한 난이도, 다양한 분량, 다양한 목적에 다른 다양한 책을 손에 들고 읽어 나가되 본인의 상태와 기분에 따라 혹은 주위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어떤 책이 잘 읽히는지 스스로 파악한 뒤 거기에 맞게 책을 읽어 나가면 되겠다. 이것은 어떤 기간 내에 여러 권을 함께 읽어 나가기 때문에 병렬독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침이나 밤 혹은 기다리거나 이동 중에는 인간의 한계 상 여러 권이 아닌 한 권만 읽을 수밖에 없으므로 여러 책을 집적대지 말고 그 한 권의 책을 집중해서 읽는다면 그건 한권독서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병렬독서니 한권독서니 이분법으로 나눌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관건은 선택과 집중이란 말이다. 


병렬독서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지도 못하면서 메뚜기처럼 이 책 저 책 앞부분만 훑어보다가 그만둬버리는 독서 습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 역시 그런 식의 독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건 독서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론이다. 병렬독서를 하되 독서를 할 시간에는 한권독서를 하면 된다. 여러 우물을 파되 우물을 팔 때에는 집중해서 그 우물만 파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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