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는 삶, 나누는 삶
읽고 쓰는 삶이 일상이 된 지 7년이 지났다. 만남의 축복으로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말에 첫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매년 한 권의 책을 신기하게도 쓰던지 번역했다. 2020년 ‘과학자의 신앙공부’ 저자로, 2021년 ‘닮은 듯 다른 우리’ 저자로, 2022년 ‘과학과 신학의 대화 Q&A’ 번역자로, 2023년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저자로, 그리고 2024년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 저자로 서게 되었다. 놀라운 점은 단 한 권도 나 혼자 기획해서 투고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책이 순전히 만남 덕분이었다. 나는 그저 절박한 마음으로 성실히 읽고 쓰고 했을 뿐이다.
가끔 사람들이 묻곤 한다. 책 세 권의 저자이고 (한 권은 아직 미출간, 곧 출간 예정) 한 권을 번역했으니 수입도 짭짤할 거라고 말이다. 물론 나는 어이가 없는 나머지 웃고 만다. 책 내서 돈 번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정가 만 원의 책에 대한 인세가 10퍼센트라고 하자. 한 권 팔리면 천 원을 벌 수 있다. 백 권 팔리면 십만 원, 천 권 팔리면 백만 원 벌 수 있다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초판 1쇄를 이천 권 찍는데, 1쇄 완판 하면 저자에겐 이백만 원 들어온다는 계산이 쉽게 나온다. 요즈음 월급으로 이백만 원 받는다고 생각해도 결코 많은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책이 매달 꼬박꼬박 이천 권이 팔리겠는가? 물론 베스트셀러 작가 몇몇 분은 그게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몇 달 지속되지 않는다. 계약직 같은 거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초판 1쇄 완판도 쉽지 않은 저자들은 (참고로 나는 출간된 세 책 중 첫 책만 2천 권 초판을 완판 했다. 나머지는 천 권 남짓 팔렸을 뿐이다. 그러므로 넉넉 잡아 총 4천 권 팔렸다고 하면 지난 5년간 내가 받은 인세는 400백만 원 언저리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결코 책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말이다. 전업작가는 시대착오적인 말일뿐이다.
참고로 대부분의 유명한 저자들은 인세가 아니라 강연료로 수입을 확보하는 듯하다. 인맥이 넓거나 책이 마침 시기를 잘 맞았다면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온다. 저자가 목사라면 여러 교회에서 말씀모임이라든지 설교로 초청받게 된다. 요청하는 곳이 규모가 큰 곳이거나 방송 관련 매체라면 그 돈은 더 올라간다. 어디에서 불러도 강연료는 아마 최소 십만 원 이상, 평균 30만 원 정도일 텐데, 일주일에 한 번 강연만 해도 평균 한 달에 백만 원을 넘게 벌 수 있다는 말이다. 방송 출연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인세의 몇십 배는 번다는 말도 되겠다.
할 얘기도 별로 없지만, 이제 내 얘기를 해볼까? 나는 비록 곧 네 권의 저자가 되고 한 권의 번역자이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마이너스였다. 단 일 원도 남기지 않고, 아니 오히려 내 사비를 보태서 인세를 모두 내가 판단해서 도움이 필요한 목회자 및 선교 관련 사람이나 단체에게 흘려보냈다. 애초부터 돈 벌려고 책을 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는 하나님의 선교에 관련하여 발톱의 때도 안 되는 사역을 한다고 생각도 하지만, 정작 팔린 책 수를 생각하면 그런 말도 부끄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내 책을 읽고 신앙과 믿음에 도움을 받은 소수의 독자들이 존재한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면 책 말고 나의 다른 읽기와 쓰기는 어떨까? 책과 관련이 없는 읽기와 쓰기가 나의 읽기와 쓰기 중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할 텐데 말이다. 이 역시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손해 밖에 없는 것 같고, 왜 이런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지 나조차도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 해도 이 삶을 선택할 것이다. 손해 보고 나누는 삶에서 나는 인간다운 삶, 사람다운 삶을 비로소 살아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짧은 인생, 내가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들, 쉽게 얻은 것들, 혹은 부단히 노력해서 얻어낸 것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나누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삶을 살아내려고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
깊고 풍성한 삶은 홀로 서 있는 외나무다리 위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한때 가장 원했던, 더 높고 화려한 빌딩의 펜트하우스 안에 갇혀 홀로 빛나는 삶에 대한 환상은 이제 더 이상 내 마음에 미련조차 남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성공지향적 가치관에서 해방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내겐 정말 기적 같은 일인 것이다. 인생 후반전의 삶, 더 깊고 풍성한 삶, 눈이 깊어지는 삶, 여백의 삶, 곧 나의 삶이 되리라.
#오블완_티스토리챌린지_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