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알아채기
흐려서 잘 보이지 않음이 누군가에겐 좌절을 안겨주겠지만, 오늘 나에겐 푸근한 신비감으로 다가온다. 그렇잖아도 부끄러운 모습이 많아 숨기고 싶은데,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니 맘이 편하다. 안개가 다 가려줄 것만 같다.
4월의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태양도 뚫지 못한 저 구름층과 바닥까지 내려앉은 안개. 그리고 그 가운데를 부유하는 티끌 같은 작은 존재인 나. 그나마 목적지가 있다는 게 어디인가. 감사할 이유는 많다.
안갯속을 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숨 막힐 정도로 두텁지 않은 한, 언제나 안개는 저만치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가까운 곳보단 먼 곳이 항상 더 짙게 보인다. 더 짙은 곳으로 가봐도 동일한 현상이 벌어질 뿐이다. 더 짙은 곳은 없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나 그곳이나 매한가지다.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안개의 농도를 착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일상이 가지는 의미는 평범하면서도 깊다. 안개가 있어도 상관없다. 일상은 시작됐다. 아니, 진행 중이다. 얼마나 알아채고 참여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