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삶

낯섦 가운데 익숙함을, 익숙함 가운데 낯섦을

by 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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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산책하는 삶: 낯섦 가운데 익숙함을, 익숙함 가운데 낯섦을


산책은 기억들을 소환한다. 눈을 감으면 나는 두 돌을 넘긴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아내와 함께 한적한 목장을 걷고 있다. 따스한 가을, 눈부신 햇살, 코끝을 간지럽히는 바람, 탁 트인 초록빛의 평원,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 불어오는 꽃향기엔 구수한 거름 냄새와 마구간 냄새가 드문드문 섞여 있다. 전형적인 시골 농가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모든 게 완벽했던 그날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기억 속 그림 한 장으로 남아 있다.


기억이란 요상하다. 한 겹을 걷어내면 마치 봉인이 해제된 것처럼 여러 겹의 기억들이 줄줄이 따라 나온다. 때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당황스럽기도 하다. 어찌 그렇게 디테일한 것들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그날 우리가 입었던 옷과 신었던 신발, 아내가 준비한 간식과 음료, 그것들이 담겨 있던 조그만 검정색 가방, 그리고 유모차 오른쪽 바퀴에 묻었던 진흙을 떼어내려 애쓰는 내 모습, 그게 잘 안 떼어져 잠시 짜증이 나 올려다보았을 때 날 보고 웃고 있던 아내의 환한 얼굴, 그 때문에 다시 평화를 찾은 내 마음까지, 모든 게 세세하게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이국 땅 낯선 장소를 걸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기억이 떠올랐던 것 같다. 말하자면 어떤 원형 같은 기억이다. 사실 그날은 모든 게 완벽했지만 모든 게 낯설기도 했다. 태어나 처음 밟았던 미국이라는 낯선 땅, 한국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클리블랜드 변두리. 우린 8만 마일을 탄 낡고 오래된 혼다 시빅을 끌고 한 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서 그 목장을 처음 방문했었다. 방문객 중 아시아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미국 정착한 지 세 달 채 되지 않던 2011년 가을. 언어도 문화도 음식도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았고 불편했으며 가끔 공포로 느껴지기도 하던 시기였다.


익숙한 것도 있었다. 가족이었다. 조그만 아내와 두 살짜리 아들을 한 덩치 하는 내가 심적으로 얼마나 의지했는지 모른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그래서 자칫 공포로 급변할 수 있었던, 그 시공간의 기억이 지금까지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가족의 힘이었을 것이다. 낯섦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하지만 낯섦이라는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 실낱 같은 익숙함을 찾아낸다면 그 시공간의 기억은 아름답게 채색된다. 두려웠던 마음도 편안한 마음으로 넉넉하게 덮인다. 그러면 낯섦도 두려움도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고 그 아름다움에 굴곡을 주어 명암을 불어넣는다. 비로소 평면이 아닌 입체가 된다.


그 이후 낯섦의 연속이었던 내 삶을 견뎌낼 때 그 기억을 떠올리기만 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여유와 용기가 생겼다. 마치 그날 진흙이 잘 안 떼어져 짜증이 확 밀려왔던 찰나, 환하게 웃고 있던 아내의 얼굴 덕분에 내 마음에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클리블랜드를 걸었고, 보스턴을 걸었으며, 뉴욕을 걷고, 캘리포니아를 걸었다. 우리는 점점 강해져 갔다. 그 산책의 기억은 내게 일종의 해독제 역할도 톡톡히 감당해 주었던 것이다.


앞에서의 산책이 낯섦 가운데 익숙함을 느꼈던 기억이라면, 미국을 떠나기 전, 그러니까 2022년 봄의 기억은 익숙함 가운데 낯섦을 발견하는 경이였다. 빛바랜 흑백사진에 색을 불어넣는 기분이랄까. 풀러턴에서 우연히 발견한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일상에 흩어진 행복의 조각들을 마침내 주워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한 뒤 귀국을 두 달 남겨두고 냈던 휴가 첫날, 나는 여느 때처럼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일들이 대부분 처리되어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기 때문일까. 고개를 돌리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조그만 길이 눈에 띄었다. 산책로 같았다. 그 근처에 2년 넘게 살면서도 한 번도 못 봤던 길이었다. 아차 싶었다. 귀국할 날이 두 달 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정들었던 곳을 곧 떠나게 되는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게 아쉬운 법이다. 나는 재빨리 구글 맵으로 그 산책로를 서치했다. 왕복 7마일 거리였다. 그 산책로는 다른 산책로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모르는 거미줄 같은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경이에 차올랐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두 눈을 멀쩡히 뜨고서도 무엇을 보고 살아왔단 말인가!


집에 돌아와 성급히 운동화로 갈아 신고 길을 나섰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길을 쉬지 않고 두 시간 반 걸었다. 조금만 멀어도 차를 타야 하는 미국 문화에 어느새 길들여져 버린 탓이었을까. 왼쪽 발목부터 엉덩이까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짧은 거리를 걷는 것과 오래 걷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여유를 갖고 오래 걷는 건 혼자 아들을 키우며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누리기엔 불가능한 일상임이 분명했지만, 그것도 다 핑계인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겠다고 누누이 나 자신에게 다짐했건만, 또다시 떠밀리고 쫓기며 살아왔던 내 모습이, 그 어리석고 미련한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주일 휴가 기간 동안만이라도 매일 걷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삶에 작은 루틴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겨서 소소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쉬지 않고 낯선 길을 걸어서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집으로 돌아올 때 즈음에야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런데 한국 식당이 근처에 있는 게 아닌가.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시키고 자리에 앉아 물을 홀짝거렸다. 앞쪽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모니터에서는 클럽에서나 나올 법한, 경쾌하지만 촌스러운 배경음악과 함께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였다. 노래방 배경화면으로나 나올 법한 영상이었지만 입이 쩍 벌어지는 절경이었다. 나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슬란드 절경을 보며 ‘이국적’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했다. ‘이국’은 존재하지만 ‘이국적’이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 하고. 적어도 그것은 이국의 그 무엇과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나에게 생경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이국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이국’은 객관적이지만, ‘이국적’이라는 표현은 주관적인 것이다. 이미 이국에 살고 있던 내가 얼마 만에 그런 이국적인 풍경을 보는 것인가 싶어 그날 나는 더욱더 아이러니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면 과연 거긴 정겹기만 할까, 혹시 이국적인 느낌이 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등의 많은 생각도 했다. 그리고 고국에서 느끼는 이국적인 삶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이국적'인 것이라는 그날의 결론은 귀국 이후 현실이 된다.


나는 내가 태어난 부산에 가서도 고향을 느끼지 못했다. 부모님이 계신 영천에서도, 대학과 대학원 때문에 10년을 살았던 포항에서도, 그리고 아내가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최근 아내를 데려다주러 다녀온 미국에서 나는 오히려 고향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고 존재하던 식당, 날 알아보는 식당 아주머니, 늘 다니던 거리 주위에 그대로 있는 건물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걸 고향이 아니면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아, 이국에서 느낀, 그 황당하리만큼 묘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향이란 무엇이고, 나의 고향은 어디인 걸까?


나그네의 노마드 삶. 나는 언제나 길 위에 있다는 생각이다. 정착하지도 방랑하지도 않는, 그 경계에 놓인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고 싶다. 누군가에게 걷기는 여전히 가난과 궁핍의 행동양식이므로 모든 걷기를 산책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산책은 휴식과 건강을 위해 느리게 걷는 행위이고 몸과 영혼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나에게 필요한 시간이므로 나는 산책을 끝까지 사수하기로 한다. 순간적인 귀찮음만 넘어서면, 자리에서 일어나 신만 신으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세상. 낯섦 가운데 발견하는 익숙함도, 익숙함 가운데 발견하는 낯섦도, 산책하며 모두 다 끌어안고 싶다. 인생이 산책이라는 표현은 경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마음 한 편에 고이 간직하며 살아갈 테다. 아등바등 대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객관성을 잃지 않는 삶, 산책하는 삶. 그 삶은 길 위에서 꾸준히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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