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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엔지니어의 성장'을 읽고

과거의 이야기에서 현재를 엿보다

<근대 엔지니어의 성장>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근대’ 엔지니어의 성장과 이를 둘러싼 제반의 이야기가 현재와 사뭇 닮아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고민과도 맞닿아있는데, 공학교육이 이제는 무엇을 다루느냐보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근대적인 개념의 엔지니어가 어떠한 배경으로 탄생했고, 성장했으며, 자리매김했느냐에 대한 공통적과 더불어 지리적, 문화적 요소에 의한 차이점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텍스트들의 엮어냄을 통해 우리에게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지점을 찾아내라고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기서 언급된 대로 진정한 의미의 ‘전문적 엔지니어’ 가 바로 그것일까. 이 시대에서 진정한 의미의 ‘전문적 엔지니어’는 무엇일까. 여기서 언급된 것과 같이 ‘융합’ 기술 역량을 갖추고, ‘창의적’ 공학 교육을 받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융합이라는 단어가 공학 교육에도 유입되고, 마찬가지로 지향하는 점이 명확하지 않는 창의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현재의 공학교육의 날카로움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아니,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는 공학 본연의 날카로움과 전문성 함양을 통한 엣지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대학교육은 이 지점을 향하고 있는가.


최근에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애자일’ 이 크게 화두다. 흔히들 탑다운 방식의 반대개념의 개발방식이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보다 깊숙히 파고들면 협업과 유연함을 기반철학으로 하는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이다. 정보기술 분야의 한 부분에서는 기능보다 방법론과 철학을 기반으로 조직의 문화와 교육접근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필요성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신산업에는 새로운 유형의 산업 인력이 필요했다’ 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는 새로운 산업을 이끌어가는 것은 새로운 방식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전기공학의 전문화를 주도한 존 A. 플레밍을 비롯한 ‘과학자 - 엔지니어들’ 이 현상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실제적 경험을 갖고 대학에서 가르치며, 과학교육에서 활용한 실험실 교육을 공학 교육에 도입해 대학의 이론 교육과 산업 현장을 연계했던 것처럼 현재에 보다 적합한 방법론이 공학교육에 도입되어야 새로운 유형의 산업 인력이 길러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공학교육의 목적이 아니냐고 감히 언급해본다. 박사 학위를 딴 연구자들의 기업 진출과 상급 경영자 진출 비율에 대한 해결책도 여기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 가진 전문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전제하고 말이다. 전문성을 가지는 것과 조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여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일부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관련된 화두와 이야기의 결과 그리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움직임은 보다 먼 시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전기공학과 화학공학도 해당 분야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엔지니어 단체가 설립되고 한 세대가 지나서야 대학 수준의 교육 과정이 체계화되었다고 언급된 것을 보면 말이다. 마찬가지로 공학교육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성격의 과학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여 정체성이 명확한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과학기술’로 명명된 우리나라에서의 개념으로는 명확한 정의 뿐만 아니라 연계와 기대효과도 측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과학, 공학, 기술 등에 대한 보다 엄밀한 정의와 구분 역시 필요하다고 느낀다. 변호사와 의사 집단처럼 공학자로 구성된 전문가 단체로의 영향력 발휘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일을 만들고 완결하는 데에는 선형적인 연속과 더불어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판을 키우는 것 역시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근대 엔지니어의 성장’을 통해 받은 전반적인 느낌은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화두와 이를 통한 이야기가 생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고민과 숙고, 쌓여짐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서로에게 피로함을 가중시킨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대한 사례를 참고하여 이를 토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안전하고 생생한 토양을 만들어가는 것, 아니 그에 대한 기반을 쌓아올리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엔지니어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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