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에게
피쉬볼 해방클럽
지구의 몇십 프로가 물이건 간에, 너에게 세상은 한가득 바다. 차가운 물속에 푹 잠겨 숨이 먹먹해지는 것 같다고 네가 그랬지. 사람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수조가 들어찬 느낌일까? 사람이라면 오래 견디지 못했을 익사의 순간에 너는 버텨냈다. 살을 찢어 아가미를 틔고 빛나는 비늘로 몸을 감싸서. 그 비참한 축축함 속에서도 살 길을 찾아낸 거야.
유월과 칠월 사이의 어느 날, 우리가 아주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다. 나는 네 머리에 피쉬볼이 자라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공포스러워 처음엔 그 수조를 벗겨내주고 싶었어. ‘왜 그 어항이 자라난 거니?’ ‘이렇게 해봐- 저렇게는 어때-‘하고. 끝에 가선 네가 나에게 어항의 존재를 숨겼다는 사실이 서운해 눈물까지 펑펑 흘렸더랬지. 지금 보면 참 이기적인 행동이었어.
생살을 찢어가며 헤엄치는 법을 배우는 너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어. 물이라는 게 참 못되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 수면 위에서는 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턱이 없고, 수면 아래에서는 너를 가라앉히려는 물과 너의 분투가 벌어진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딱이야. 물 밖에선 물속의 소리가 닿지 않으니까. 끝없이 혼자 남겨진 기분이 얼마나 끔직할지 나는 알 수 없었어.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을 지나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깨달았다. 그래서 독서실 구석에서 그림 한 장을 그려냈지.
비취색 바다, 그 속 알알이 가라앉은 모래와 알록달록한 산호초. 그곳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한 마리까지. 그림 속 너는 이 모든 걸 담아낸 어항을 쓰고 바다에 빠져있어. 그 옆의 핫핑크 오리발과 스쿠버 장비를 낀 애가 너와 신나게 노니는데, 부글부글 공기 방울을 내뿜으며 너와 떠들어대. 이 모임의 이름은 피쉬볼 해방클럽. 모임에서만큼은 모두가 인공 바닷속으로 뛰어들지. 사람을 짓무르는 세상의 바다와는 달리 이 바다는 보듬어주는 바다야.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단단해져 생긴, 우리의 상처를 포옹해 주는 바다. 바다에 빠진 바다를 담은 피쉬볼은 더 이상 너를 아프게 할 수 없겠지! 더 따듯하고 커다란 바다에 빠진 피쉬볼은 이제 빛나는 유리창에 불과할 거야.
잠깐의 해방일지라도 나는 함께 헤엄치는 핫핑크 다이버가 되고 싶어. 그 망할 유리 보울이 사라지지 않는대도 우리의 바다가 있다면 괜찮을 거야. 피쉬볼에서의 해방- 너와 내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상쾌함. 수없이 많은 해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 가끔 너의 피쉬볼 속 바다가 우렁우렁 너를 짓무를 때면 곧 있을 다음번의 해방을 상상하자. 내가 핫핑크 오리발을 뽐내는 모습을 상상해 봐. 약속된 해방, 약속된 즐거움. 우리는 행복을 예약해두었어!
P.S
네가 그림 해석을 맞추는 날 십억을 준다고 했는데
그만큼은 없어서 긴 해석을 준비했어.
즐겁게 읽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