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태껏 이렇게 살아왔는데

순수 소비습관만으로 인해 벌어진 재난이었다.

by 영영

무엇이든 처음 시작하기가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무엇이든 처음 시작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처럼 유지하는 게 어려웠지.


대학 진학이 그랬고, 아르바이트 구하는 것들이 그랬고, 첫 입사가 그랬고, 아무튼 이것저것 다 그랬다.

내 기준에서는 많이 노력하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의 성공률을 항상 달성하다 보니 세상이 생각보다 만만했다. 아주아주 잘 살 수는 없겠지만 또 아주아주 못 살지는 않겠구나. 그래도 나는 평균값은 하면서 살겠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건 '평균은 하겠구나' 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손댔던 것 중 단 하나도 제대로 마무리를 지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태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으니까.




어머니께서는 이십여 년 전부터 학교 조리실무사로 일해 오셨고, 아버지께서는 내내 중소기업에서 일하시다 은퇴 후 지금은 마트 배달 일을 하고 계시니까 분명 우리 집의 금전적 사정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그걸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현실을 절감하고 생활 태도를 바꾸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게, 나는 우리 집의 사정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한 번도 금전적으로 아쉽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남들처럼 가족 단위 해외여행을 분기별로 가지 못한다거나, 받고 싶은 PT나 피부 관리, 마사지 등을 마음껏 받지 못한다거나 하는 류의 아쉬움이 아니다. 내가 집세와 공과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2~3개월 열심히 모으면 해외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국내 여행 일주일 정도는 계획할 수 있고, 당장 학자금이나 주택 관련 대출 이자를 내지 않아도 괜찮은 삶. 그건 모두 내가 서른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도 부모님의 금전적 짐을 덜어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20살이 된 2015년부터 대학을 졸업하던 2020년까지 나는 줄곧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며 아르바이트비로는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이 와중에도 부모님께서 자취방 월세 및 생활비, 학비 등을 지원해 주시긴 했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졸업할 때쯤 알바를 하면서 모아 두었던 돈이 단 한 푼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그땐 괜찮았다. 많아 봐야 월 50만 원이었고, 대학을 다니려면 숨만 쉬고 살아도 모으려야 모을 수가 없는 돈이었으니까.

나는 아동학을 전공해서 2020년 8월에 졸업 후 집 근처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처음 입사했고, 2022년 2월에 퇴사할 때까지 월급으로 세후 약 160만 원을 받았다. 당연히 월세와 식비 걱정은 없었다. 적당히 돈 낭비해 가면서 한 달에 백만 원씩 모아 1200만 원가량을 만든 후 퇴직금과 함께 그 돈을 들고 퇴사했다.

그리고는 약 1년 6개월 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사회복지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이 기간 동안 그 천이백 플러스 아르바이트비를 생활비 명목으로 홀라당 까먹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23년 말이었다. 벌써 내 스물여덟이 다 지나가 있었다. 알바와 공부를 병행한답시고 피로를 호소하느라 공부에만 열중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히 공무원 시험에 합격도 못 했다.


남은 건 통장 잔고 0원, 할부로 끊어 놓은 인터넷 강의료 및 교재비, 독서실 이용료 백만 원,

주택청약 100만 원. 하지만 이 청약은 깰 수 없는 돈이다.

그러니까 진짜로 남은 건 신용카드 할부 100만 원 정도.

이때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근데 이때 얼추 차리긴 차렸었다.

지금은 대차게 망하긴 했는데, 아무튼 이 때는 그랬다.

얼추 차리지 말고 진짜 진짜로 정신 바짝 차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