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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여니 Nov 15. 2024

읽고 걷는, 가을의 대화

단풍길에서 피어난 인연

그녀와 나는 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잎 사이를 함께 걸었다. 가을이 떠나기 전, 온전히 느끼고 싶어 떠난 길이었다. 아침 일찍 만나 동네가 아닌,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여러 단풍을 느낄 수 있었다.


멀지 않고, 한정된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거닐며 풀벌레 소리도 느끼고 살랑살랑 떨어지는 낙엽들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길, 평안 그 자체였다.







그녀와 만난 지는 이제야 한 달 정도 지났다. 한 달 만에 이렇게 급격하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린 시절처럼 그저 편하게 친해지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 우리는 우연히 교육장에서 만났다. 그림을 그리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교육에서 서로의 이름, 나이, 그리고 그린 그림에 대한 사연을 하나씩 듣고 만난 사이였다. 어색했던 첫 교육이 끝나고 마치 모래알처럼 각자 흩어졌다. 언제 만났는지 모를 정도로.



두 번째 교육 후, 같은 동네 산다는 이유로 그녀와 함께 버스를 탔다. 5분 남짓한 시간 안에, 몇 년 동안 같은 반에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낸 아이친구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시작된 한 잔의 커피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교육이 끝난 후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걸었다. 육아, 교육 등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끝에는 책이 있었다. 청소년 소설, 한강 작가님 책 등 그동안 각자 읽었던 책들을 소개하며, 대화가 통하는 신기함을 느꼈다.



독서모임 3년 차, 늘 혼자 읽고 독서 모임에서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온라인을 통해 책 읽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은 알았으나, 내 주변에선 직접 만나기 어려웠다. 지인들에게 함께 읽자고 제안해도 꺼리는 표정들,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 친구도 있었지만, 함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엔 서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책 읽는 지인이 생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공감했다. 그녀도 도서관 독서모임을 통해 생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있었고, 다양한 교육을 찾아 듣고 배우는 열정이 있었다. 혼자 있을 때조차 스터디카페에서 책을 읽는 그녀는, 5주간의 교육 내내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잘 써 내려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퇴사 전, 혼자 애쓰던 이야기들과 퇴사 후, 도전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삶의 모습이 달랐어도 직장생활과 육아를 겪어본 경험이 있기에 서로 공감할 수 있었다.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며 그림과 에세이를 쓰는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어느덧 5주간의 교육은 빠르게 지나갔다. 각자 숙제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열흘 뒤, 집 근처카페에서 급히 연락 주고받으며 만났다. 가을 산책을 떠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했다. 그동안 독서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과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며 배운 것들을 나누었다. 또한, 학부모 교육에서 새롭게 배운 것들도 나누며 대화의 폭이 넓어졌다.




다음날, 우리는 가을 산책을 떠났다. 유명 관광지나 맛집이 아닌 곳에서 설렘을 느끼며 삶을 나누었다. 잠시 학부모의 역할은 내려놓고, 서로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나이 차이를 넘어 공통된 관심사를 나누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퇴사로 인해 적적하던 순간에 찾아온 인연에 감사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았지만 몇 년 동안 서로 모르고 지냈다. 아이들이 몇 번이나 같은 반이었지만, 아이들끼리만 친해 서로 만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사 후 이렇게 절친이 된 것이 놀랍고도 흥미로웠다.





얼마 전 사두었던 책과 편지를 건넸다.  나에게 다가와줘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전했다. 책 선물은 여러 번 해봤지만,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라며 감동하던 그녀의 모습을 보니, 이 또한 큰 행복을 주었다.





단풍길을 걷고 또 걸으며, 낙엽이 바라보이는 창가 카페에 앉아서도 계속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해진다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헤어짐이 아쉬울 만큼, 어떤 이야기를 담았다가 또 나누게 될지 기대된다.



글쓰기를 통해 친구를 만나고, 책을 통해 우정이 깊어지는 시간을 보냈다. 삶 속에서 또 다른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읽고 걷고 쓰며 서로를 알아가고, 그 깊어지는 시간들을 통해 또 다른 설렘을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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