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대로만 살던 내가, 드디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6년 동안 회사에서 보낸 시간은 내 인생의 중요한 일부였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주어진 업무를 맡고 기획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하며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지만, 그 모든 것이 정말 '내가' 움직여서 한 일일까? 아니면 주어진 틀 속에서 '해야 한다'는 강박에 따라 움직인 것일까?
회사에서 발령받아 간 부서 업무를 처음 맡으면서 너무 막막했다.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은 너무 어려웠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퇴근 후 다른 지점에 찾아가 필요한 이론들을 배우고, 자료를 얻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하나씩 규정집을 찾아보고 서류를 정리하면서, 무엇이든 차근차근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이전 회사에서 해왔던 업무와 비슷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점차 일이 편해졌다. 나만의 방식으로 체계를 잡고, 기본 원칙을 중요시하며 업무를 진행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융통성이 없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압박을 받기도 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에선 내가 믿는 원칙을 고수했다. 내가 맡은 일이라면 끝까지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는 나만의 경험과 경력을 쌓아갔고, 그 덕분에 일이 손에 익었다. 어느덧 나는 안정감을 느끼며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안정된 후, 새로운 곳으로 발령받았다. 그때 개인적인 변화(결혼, 임신)도 있었기에 그 발령이 그리 아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의 양은 늘어났지만, 이전 경험 덕분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더 반복적인 일들에 익숙해지자 차츰 '대체불가한 인력'이라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나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어느새 이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 그 사실이 기쁘기보단 나를 더욱 속박하는 느낌이 들었다.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있어 내 목을 점점 옥죄어 오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쩌다 휴가에는 편히 쉴 수가 없었고, 계속된 연락은 업무의 연장선이 되었다. 일이 끝나지 않아 야근이나 주말근무도 추가로 해야 했다. 무엇인가 일을 찾아서 하기보단, 지금 현재 진행되는 일만 최대한 처리해도 체체력이 부족하여 늘 녹초가 되었다. 임시로 보충 인력이 투입되어도 점점 휴가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고, 대체인력도 없으니 부서 이동도 불가한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매년 고정된 속에서 나의 마음들은 어떠한 여유를 찾을 수 없이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아이들도 자라는 과정이다 보니 더 이상의 에너지를 보충할만한 곳이 없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주변을 환기시키는 기회,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한 열정을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은 제공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 그저 '해야만 하는 일'로 내 삶이 굳어져버린 것이었다. 신선한 공기와 영양분들이 계속 제공되어야 식물도 잘 자랄 수 있는 법인데, 고인 물속에서 내 삶은 뿌리부터 썩고 있었다.
마음속에선 수없이 요동쳤지만, 현실을 바라보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내 삶을 찾아 나서기엔 지나치게 욕심 같았다. 그런데 내 마음을 무시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평안을 지키여 애쓰다 보니, 마음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더욱 많은 업무들이 내게 쏟아지는 것을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 답답함을 느꼈지만, 도저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고, 어느 순간 숨이 막히는 고통을 느꼈다. 이대로는 곧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찾아오고 나서야 내 몸과 마음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의 삶을 찾아. 네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봐. "
어느 날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너무 힘들어 "못하겠다"라고 외쳐도, 어느 누구 하나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회사 속 많은 사람들 속에 고독을 느끼면서, 점점 더 골방에 박혀있는 나를 발견했다. 깊이 있게 내 상황을 보살펴주는 이는 없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임을 깨달았다. 스트레스가 원인인지 갑자기 심장이 멈추는 듯한 고통과 함께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렇게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더 이상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기에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그래. 지금 아니면 벗어날 수 없어. 어쩌면 이 고통은 내게 기회가 될지도 몰라."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에 드디어 귀 기울여 듣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40대라는 나이에 준비 없이 떠나는 것이 두렵고 불안했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임을 느꼈다. 그런데 그만두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 있다. 바보같이 내가 그동안 너무나 많은 시간을 회사의 요구에 맞추어 살아왔다는 것이다.
퇴사 후, 나는 스스로의 삶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성경을 묵상하고, 책을 읽고, 기도하면서 내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외부의 요구에 맞춰 살았던 내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회사를 떠난 후 내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매일 내가 정한 일들을 해가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채워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이제는 가족과의 시간도, 집안일도, 내 삶의 중요한 일부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 무작정 바쁘게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니라, 스케줄을 체크하면서 일상의 소중함도 느끼고 있다. 내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식탁에서 거실을 바라보며 창문 가득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는 순간, 여유 속에서 살아가도 나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음을 느꼈다. 퇴사 이후의 삶은 여전히 많은 불확실성과 도전이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택한 길이 나를 더욱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매일 배우고 있다. 변화의 시작은 힘들지만, 결국 이 삶 또한 나를 위한 중요한 여정임을 믿어본다. 그리고 오늘도 하루의 삶을 채워감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