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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여니 Oct 30. 2024

"저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다.

20대에 입사한 회사에서 어느새 30대를 지나 40대 16년 차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어려움과 고민들이 반복되었고, 결국 퇴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당황한 회사 상사들은 하나, 둘씩 찾아와 내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다.
이제껏 힘들게 버티고선 왜 포기하는 건지. 나이 마흔 넘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으니 다시 생각하길 권유했다. 몇 년만 더 견디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고문을 끊임없이 시작했다. 정말 진정한 조언들이 없다 느꼈다. 앞서 살아가는 선배들의 조언이라고 하기엔 너무 황당한 만큼 자신들의 입장이 가득한 말뿐이었다.


 오랜 시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 어떠한 설득에도 내 마음을 돌리기엔 너무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들을수록 한번 해보겠다는 오기도 생겼다.




출, 퇴근으로 왕복 4시간을 보낸 긴 시간들의 마지막 날 아침. 출근마다 엄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던 아이가 마무리를 잘하고 오라며 엄마를 안아주었다.


"친구들의 집에 있는 엄마들이 너무 부러웠는데, 오늘이 지나면 우리도 엄마가 집에 있다니 너무 행복해"


아이의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내가 버티고 있는 만큼 아이도 그 시간들을 애써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이 가득했다. 어쩌면 이 결정이 모두가 바라던 선택이었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이었다.





햇살마저 화사하니 기분을 묘하게 했다. 매일 그대로 있는 듯한 일상들이 어느 순간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바람과 숨결, 지하철 냄새까지 긴 시간 버티며 살아냈던 그 순간들을 떠오르게 했다.





 20대 도도했던 아가씨였는데, 어느새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까지 병행하는 철인이 된 현실에 가끔 놀란다. 장거리 출, 퇴근을 하면서 아이들을 챙기는 게여간 쉽지 않았다. 가족들의 도움보단 아이 돌보미 선생님의 도움에 견딜 수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너무나 힘겨웠다. 아이들 어릴 때만 버티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자라면 자랄수록 끝없는 육아전쟁에 매일 눈물로 출근했다.




첫째 초등 입학과 동시에 찾아온 코로나라는 재앙으로부턴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쯤 미쳐있는 상태로 출근길에 몇 번씩이나 자가격리나 긴급 등교 중지 때문에 조퇴가 일상이었다. 회사에 버티는 것조차 너무 욕심같이 느껴졌다.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던 그 시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육아 과정을 겪었던 동료들의 배려가 나를 견디게 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16년이라는 업무 경력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다.




그 시절을 지나 아이들이 커가며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한 순간, ‘진짜 잘 이겨낸 것이 맞을까? 어쩌면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들처럼 끌려온 게 아니었을까?’ 싶은 혼란스러운 마음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들에 갇히고 나니 더 이상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매일이 힘겨웠다.


결국 억지로 버티다 보니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냈다. 더 버티다간 미래까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결국 내가 먼저 살기 위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애쓰고 수고했던 모든 일들이 허무하리만큼 정리가 되었다. 무엇을 위해 지금껏 그리 버틴 걸까 싶을 만큼 빠르게 처리되었다. 혼자 하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인수인계서에 빼곡히 적어낸 것들조차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토록 많은 일들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기특했다. 한편으론, 혼자 고군분투했을 나 자신이 불쌍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일을 마무리하는 순간, 허무하게 느껴졌던 그 시간들이 생각보다 귀한 시간들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시간이었기에 아쉬움보단 후련함이 가득했다. 책상 가득 채워진 오래된 서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정리했다. 오랜 시간 앉았던 책상과 의자, 그리고 업무들이 가득 채워져 있는 컴퓨터를 쓰다듬었다. 긴 시간 동안 나와 동고동락했던 그 모든 것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더 이상 잡을 수 없었던 동료들의 마지막 배웅을 받으며 감사함에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쉬움과 축복의 말들로 채워진 순간,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애써 눈물 흘리지 않으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그 지난 시간들에 대한 감정이 올라왔다.




괜찮은 척 급하게 어둑해진 종로의 거리 속으로 들어갔다. 답답했던 그 환경조차 왠지 당분간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난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다.'


그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마지막 퇴근길을 재촉하며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달려갔다.




사실 앞으로의 일들에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당장 내일부터 무엇하며 지내야 할지 고민스럽다. 초보 전업맘으로 살림부터 다시 배워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구의 강요도 아닌, 40대의 내가 내린 결정이기에 앞으로의 시간들을 살며시 기대로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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