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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엄마의 감정 롤러코스터

아이들 몰래카메라 작전에 당하다

by 지혜여니


부모가 되고 나니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만큼 자연스레 내 부모님을 떠올리는 일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부모를 향한 마음보다 자식을 향한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종종 느낀다. 어버이날을 맞아 미리 양가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카드를 건네고, 용돈을 챙겨드리며 자식으로서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했다.



어버이날 당일이 되자, 내 마음은 어느새 아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아직 어리지만 이제는 조금은 부모 마음을 헤아리고 보답할 줄 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 것이다. 내가 보여준 만큼 받고 싶다는 마음이랄까.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하루 종일 기다려졌다.



학교에서 억지로라도 카드 한 장 써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하교한 아이들에겐 아무 소식이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카드 써 들고 오자마자 건네주던 카드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초조해졌지만, 학원까지 다녀오면 무언가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내색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나 저녁식사까지 마친 뒤에도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나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오늘 뭐 없어? 뭔가 준비한 거 없어?”



지인들이나 SNS에서는 아이들에게 받은 어버이날 선물과 카드를 자랑하는 모습이 넘쳐났는데, 우리 아이들은 너무 조용했다. 억지로 받아야 할 것도 아니고, 꼭 받아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없으니 서운한 마음 가득했다. 어린이날 연휴 동안 부모로서 나름 애썼는데 감사 편지 한 장 없다는 생각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괘씸함이 차올랐다.



‘어릴 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라도 카드랑 이벤트 선물들을 가져와 감동 주었는데'

‘클수록 더하네, 이거 가정교육 문제 있는 거 아냐?’

‘억지로라도 감사 인사를 하면 큰일 나는 걸까?’

‘꼭 뭔가를 받아야겠다는 건 아닌데, 부모 생각이 없나?’



마음을 진정시키려 해도 속에서 점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너희들 이리 나와 봐. 어린이날엔 그렇게 당당하더니, 어버이날엔 왜 쥐 죽은 듯이 있어?”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 밤 9시, 아이들에게 치사한 부모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던 아이들이 결국 서로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빨간 봉투를 내밀었다. 엄마 눈치를 보며 급히 준비한 티가 팍팍 났지만, 툭 내밀고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왠지 귀엽긴 했다.


'결국 임시로 후다닥 했구먼! 억지로 카드 한 장 받네'



마음을 다잡고 카드를 읽어보았다. 겉보기와는 달리 정성이 담긴 카드와 작은 선물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냉동실에는 화해의 의미로 준비한 아이스크림까지. (언제 사서 넣어둔 거지?) 엄마를 놀라게 하려 일부러 장난쳤다는 말에 화를 내려던 내 모습이 민망해졌다. 이제 컸다고 엄마를 놀려먹기까지 하다니!



아이들은 때론 병 주고 약 주는 존재 같다. 카드 한 장에 온갖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지고, 사랑만 가득 전해졌다.



그때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주들이 카톡으로 보낸 편지 덕분에 감동받았다며, ‘우리 딸, 자식들 잘 키웠다’는 칭찬까지 덤으로 들었다. 저녁 내내 툴툴거렸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부끄러워졌다. 주말엔 엄마, 아빠를 위해 요리도 해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아이들 덕분에 결국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방에서 둘이 키득거렸을 아이들 모습이 떠오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렇게 또 한 해, 특별한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카드 내용도 한층 깊어지고, 엄마 아빠를 위해 시간을 준비해 준 마음이 고마웠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속을 식히며, 내 모습에 스스로 웃음이 났다. 벌써 갱년기인가? 아직 성인도 아닌 아이들에게 서운해할 내가 아니었는데, 새삼스러운 내 모습이 웃겼다.



어버이날, 부모님의 사랑은 너무 커서 다 갚을 순 없어도, 이렇게 작은 행복과 추억으로 채워가는 지금이 참 소중하다.



그래도 하루 종일 엄마의 감정 롤러코스터를 보면서 둘이 키득거렸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약 올랐다.


'내년 어린이날? 두고 보자. 엄마, 이제 뒤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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