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된 미래 사회
『넥서스』는 단순한 기술 전망서가 아니다. 인류사적 거시적 시각으로 미래를 풀어내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한국 사회의 디지털 전환을 가까이서 분석해 온 정보통신학자 김명주가 함께 집필했다는 점에서 이미 특별하다. 두 저자는 ‘넥서스’라는 제목처럼 기술, 사회, 인간이라는 세 축이 어떻게 서로 교차하고 얽히는지를 탐구한다.
책의 구성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생명공학 등 급속히 발전하는 첨단 기술이 불러올 기회와 위험을 다룬다. 둘째, 이러한 기술이 사회 구조와 불평등의 양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살핀다. 마지막으로, 기술이 인간다움과 공동체적 가치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를 묻는다. 단순히 “앞으로 이런 기술이 나온다”라는 전망을 넘어, 인간이 기술과 더불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지를 본격적으로 성찰하는 책이다.
특히 하라리는 인류 문명의 장기적 흐름 속에서 기술의 의미를 짚어내고, 김명주는 한국 사회의 구체적 맥락—교육, 노동, 플랫폼 독점 등—을 사례로 들어 독자가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덕분에 이 책은 미래학서이자 사회비평서, 동시에 인문학적 성찰서라는 성격을 함께 지닌다.
책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생명공학 등 첨단 기술이 불러올 거대한 변화를 짚는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선택을 추적하고 예측하며, 점차 인간의 사고를 대체할 준비를 한다. 인간이 신뢰하던 직관이나 경험은 기계의 정확성 앞에서 도전을 받는다.
이 흐름은 한국 사회에서도 뚜렷하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플랫폼은 소비자에겐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소상공인에게는 수수료와 데이터 종속을 강요한다. 한 치킨집 사장이 손님보다 배달앱의 정책 변경을 더 신경 쓰는 현실은, 기술의 효율 뒤에 숨은 불안을 잘 보여준다.
『넥서스』가 강조하는 또 다른 축은 사회의 불평등 구조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에게 더 큰 힘을 제공한다.
교육을 떠올려 보자.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인공지능 기반 학습 도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이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는 가정의 경제력과 정보력에 달려 있다. 어떤 학생은 챗GPT를 활용해 글쓰기 첨삭을 받고 수학 풀이 과정을 대화식으로 학습한다. 반면 디지털 접근성이 부족한 학생은 같은 과목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선다. ‘AI 학습 격차’가 ‘문해력 격차’와 결합해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기술은 단순 노동뿐 아니라 감정 노동까지 대체하기 시작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이제는 사람보다 AI 음성을 먼저 만난다. 은행 상담, 통신사 문의, 심지어 정신건강 상담의 초입 단계까지 챗봇이 들어오고 있다.
이것은 일자리 문제를 넘어선다. 고객의 불안과 불만을 들어주던 상담원의 공감이 사라지면, 기술은 문제 해결은 해줄지 몰라도 위로는 해주지 못한다. 『넥서스』가 묻는 “인간다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한국 사회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기술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세대마다 크게 다르다.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AI 역량검사와 화상 면접이 보편화되었다. 20대는 이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지만, 중장년층 구직자는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기계에게 떨어졌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같은 제도를 두고 세대별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은 기술이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실제로 한 24세 취업준비생은 AI 역량검사를 대비하기 위해 스터디 그룹을 꾸리고, 관련 교재를 사서 연습했다. 그는 “기계라면 공정하게 평가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었다. 반면 47세 구직자는 면접 프로그램 사용법조차 익숙하지 않아 첫 화면에서 긴장하다 제대로 응시하지 못했다. 그는 “사람의 눈빛도 못 마주치고 기계에게 탈락 통보를 받는 게 말이 되냐”며 박탈감을 토로했다. 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세대와 경험에 따라 정서와 결과가 이렇게 달라진다. 『넥서스』가 경고하는 사회적 균열이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예술 영역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난다. 국내 미술 공모전에서 AI 생성 이미지가 입상해 논란이 일었고, 일부 심사위원조차 인간의 작품과 구분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음악 분야에서도 AI 작곡이 상업적으로 활용되며, 창작자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여전히 “진짜 인간의 흔적”을 찾는다. 인간의 고유한 감각과 이야기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넥서스』가 현재의 분석에 머문다면, 우리가 덧붙일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첫째,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의사결정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미 금융, 의료, 행정 분야에서 AI의 판단이 사람보다 더 신뢰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둘째, 기술을 둘러싼 갈등은 국가 간 경쟁을 넘어 세대와 계층 간의 갈등으로 확산될 것이다. 젊은 세대는 AI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만, 기성세대는 불안과 저항을 드러낸다. 셋째, 우리는 머지않아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혼종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유전자 편집, 맞춤형 의료 기술은 인간 존재의 조건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넥서스』는 기술과 사회, 인간을 연결하는 촘촘한 사유의 지도다. 그러나 이 지도는 완성본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밑그림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도 볼 수 있듯, 기술은 이미 불평등과 갈등을 낳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의 정체성을 지키고, 공동체적 가치를 재확인하며, 기술의 폭주를 제어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넥서스』로 인문학 파티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독자와 함께 답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인문학 파티를 마치며
긴 여정을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이 글을 시작할 때 저는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리뷰어가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행자로서 목소리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던진 질문은 결국 우리 각자의 삶과 맞닿아 있었고, 함께 사유하는 순간들이 저에게는 또 하나의 배움이었습니다.
『넥서스』를 마지막 장으로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기술과 사회, 인간의 삶을 연결해 다시 묻는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가장 생생하게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입니다. 배달앱을 열고, 아이와 학습 도구를 고르고, 면접을 준비하는 아주 일상적인 장면조차 거대한 흐름 속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인문학 파티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질문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인간다움을 지켜낼 것인지, 그것은 각자의 삶 속에서 답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답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이 자리에서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인사이자,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작은 약속이기도 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