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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쇼팽 발라드 No.4, Op.52

by 이제이

프레데리크 쇼팽의 발라드 4번 F단조 Op.52는 1842년 파리에서 탄생한 걸작으로, 쇼팽이 단순한 피아노 곡을 넘어 하나의 서사시 같은 음악 세계를 펼쳐 보인 작품이다. 이 곡은 쇼팽의 내면에 깃든 고뇌와 철학을 담아내며,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들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당시 그는 건강이 악화되고, 조르주 상드와의 관계도 불안정했으며, 조국을 떠난 망명자로서의 외로움 속에 있었다. 이러한 고독과 사유의 시간이 이 곡의 본질을 이뤘다.

발라드 4번은 소나타 형식을 벗어나 자유로운 서사 구조로 전개된다. 도입부의 잔잔한 선율은 마치 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의식처럼 시작해, 점차 갈등과 격정으로 고조된다. 이어지는 주제는 사랑과 회한,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며 서로 부딪히고 화해한다. 마지막 코다에서는 모든 긴장이 폭발하며, 감정의 파멸과 초월이 한순간에 교차한다. 그것은 단순한 절정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그린 듯한 음악적 붕괴이자 재탄생의 장면이다.


음악학자 짐 샘슨은 이 곡을 “감정과 구조가 완벽히 결합된 낭만주의의 정점”이라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발라드 4번이 쇼팽의 형식 실험이 절정에 달한 작품으로, 19세기 피아노 문학 중 가장 서사적이며 철학적인 곡이라 말한다. 이 곡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깊은 사유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더 널리 알려지고 대중에게 사랑받게 된 데에는 한국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공이 크다. 그는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세계 무대에서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며 한국 클래식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발라드 4번에서의 그의 연주는 ‘절제의 미학’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그는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다스린다. 한 음 한 음을 사유하듯 치며, 피아노가 아닌 자신을 연주한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침묵과 여백이 오히려 음악보다 더 강한 울림을 전한다.


2017년 브뤼셀 공연에서 조성진이 연주한 이 곡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영국 가디언지는 그의 연주를 “폭발보다 침묵 속의 긴장을 만드는 연주”라 평했고, 유럽 평론가들은 그의 터치가 “지적이고 내면적인 서정”이라 했다. 그는 음 하나하나를 공들여 조율하며,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결코 냉정하지 않다. 그 안에는 깊은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다.


일반 대중이 조성진의 연주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진심 때문이다. 그는 과시하지 않고,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믿는 소리의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그 연주를 들으며 자신이 느끼는 삶의 복잡한 감정이 정리되는 듯한 위로를 받는다. 화려함 대신 절제, 격정 대신 진정, 외침 대신 침묵이 그의 연주의 본질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대중에게 안정감을 주고, 동시에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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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D, 기업교육 강사이자 아마추어 성악도이며, 1인 기업 CEO로 활동중인 프리랜서이고, 엄마 입니다. 삶과 여성,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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