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의 입구는 언제나 삶의 비린내와 활기가 묘하게 섞여 있다. 누군가는 그 소란함이 싫어 대형 마트의 정갈한 진열대로 향하지만, 나는 가끔 마음이 허기질 때 일부러 이 소란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날은 유독 세상의 속도에 발을 맞추지 못해 뒤처진 기분이 들던 오후였다. 내가 가진 패가 너무 초라해 보였고, 남들은 다 앞서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멈춰 서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채소가게 앞에 멈춰 섰다. 무심하게 흙이 묻은 당근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주인 할머니는 주름진 손마디로 검은 비닐봉지를 벌리더니, 슬쩍 오이 두 개를 더 밀어 넣으셨다. 툭 하고 봉지 바닥에 떨어지는 오이의 무게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이건 덤이야, 가서 시원하게 깎아 먹어, 속이 타면 이런 게 약이지.
내가 "할머니 남는 것도 없으시겠어요." 하며 손사래를 치자, 할머니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툭 던지듯 말씀하셨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래. 모자라면 채워 살고, 남으면 나눠 사는 거지. 너만 부족한 거 아니니까 어깨 좀 펴고 다녀. 덤은 그냥 공짜가 아니라, 기운 내라는 응원이야.
그 순간 비닐봉지 속 오이 두 개의 무게가 천근만근 무겁게 다가왔다. 할머니는 내 지갑 속 삼천 원이 아니라, 내 구부정한 어깨와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를 보고 계셨던 거다. 덤이라는 건 단순히 물건을 더 얹어주는 장사꾼의 수완이 아니라, 너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세상의 짧은 응원가였다. 그날 저녁 나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세상에서 가장 아삭하고 달콤한 응원을 씹어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시원한 오이의 수분이 내 안의 메마른 자존감을 적시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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