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
사람은 누구에게 인정받을 때보다
이해받을 때 더 깊이 울컥해진다.
내게는 40년 지기 남사친이 있다.
철부지 시절부터 이유도 없이 붙어 다니던,
그냥 “동네 사람” 같은 친구.
그는 30년 전, 돌연 미국으로 건너갔다.
청춘의 거의 전부를 그곳에 두고 살았다.
우리는 간간이 안부를 전했지만
한국과 미국의 거리는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기엔
늘 조금 멀었다.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지금,
그는 말한다.
“이제 돌아가려고.”
청춘 대신
정서의 뿌리가 있는 곳으로.
귀국을 준비하는 그의 목소리엔
설렘과 조급함,
막연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계획을 세우고,
집을 정리하고,
관계를 정돈하며
몸도 생각도 마음도 분주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보였다.
30년을 이방인으로 살아낸
그의 중심이.
그는 늘 농담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다.
진지함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10대 때부터 그랬다.
서로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시절,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덕선이, 정환이, 선우, 택이처럼
우리는 그저 함께였다.
1998년 새벽,
박세리의 US 오픈 파이널 경기를 보며
“야! 너 미국 가면 박세리 꼬셔!
난 박찬호 꼬실게!”
하고 오징어를 씹어대던 그 시절.
그의 장난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 단단하다.
자신의 인생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신중하고, 계산하고, 늘 대비한다.
다만
표현이 서툴 뿐.
그래서 나는 물었다.
“너, 그동안 오해 많이 받았지?”
가볍다.
날티난다.
속을 모르겠다.
바람둥이 같다.
그런 말들을
그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았고,
변명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설명이 자신을 증명해주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그는 오해를 바로잡느라
에너지를 쓰기보다
자기 삶을 지키는 데 힘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래서 말해주고 싶었다.
“돌아오면 더 잘 될 거야.”
근거는 없다.
데이터도 없다.
그저 오래 본 사람의 감각이다.
이제야
너라는 사람이 제대로 보이거든.
때로는
대단한 조언이 아니라
“나, 너 알아.”
“너, 그 사람 아니잖아.”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30년을
조용히 위로한다.
행복은 거창하게 오지 않는다.
이해받는 순간,
조용히 싹튼다.
환영한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