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껍데기, 투박한 진실 껴안기

by 이제이

빛나는 껍데기는 언제나 우리를 유혹한다.
완벽해 보이는 말과 태도, 흠 없는 모습으로 연기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우리는 ‘보이는 나’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연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진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은 늘 불편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 애써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불편함을 피하려고 더 열심히 껍데기를 닦고, 더 반짝이게 만들려 애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이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진실을 외면하며 사는 일은 끊임없이 나를 속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연기를 이어가야 한다.

결국 우리는 알게 된다.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그 짧은 불편함이,
진실을 외면하며 쓰는 긴 고통의 에너지보다 훨씬 작다는 것을.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에서 톨스토이는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이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죽음 앞에 선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평생 쌓아온 것들—지위, 체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그 모든 것이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깨닫는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나는 제대로 살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빛나는 껍데기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전혀 다른 것들이다.
지금 당장 웃을 수 있었던 순간,
함께 있는 사람과 느꼈던 안정과 온기,
먹고, 보고, 만지고, 느끼며 살아 있음을 실감했던 감각들.

삶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도,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일이라는 것.

투박한 진실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꾸며낸 삶이 아니라, 느껴지는 삶.
보여주기 위한 내가 아니라, 살아가는 나.

빛나는 껍데기가 연기라면,
투박한 진실은 삶이다.

연기는 박수를 받지만 끝이 나고,
삶은 느껴지는 만큼 깊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잠시 빛나기 위해 나를 속일 것인가,
아니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껴안을 것인가.

나는 점점 후자를 택하려 한다.
조금 서툴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지금 웃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쪽으로.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살아 있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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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D, 기업교육 강사이자 아마추어 성악도이며, 1인 기업 CEO로 활동중인 프리랜서이고, 엄마 입니다. 삶과 여성,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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