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늘 선택받는 쪽이었다.
조선의 끝자락, 나라가 기울어가던 그 시절에도
그녀의 삶만은 기울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부유한 집안, 넘치던 재산,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선택—일본 유학.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모던 걸”이라 불렀다.
단정한 한복 대신 서양식 원피스를 입고,
조선어와 일본어, 때로는 영어까지 섞어 말하는 그녀를 보며
누군가는 동경했고, 누군가는 혀를 찼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몰랐다.
그녀가 무엇을 보고 돌아왔는지.
유학 시절, 그녀는 배웠다.
지식보다 먼저
나라가 사라지는 순간의 공기를.
지도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이 ‘국민’이 아닌 ‘식민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날 이후로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그녀를 원했다.
명문가 자제들, 군인, 관리, 심지어 일본 고위층까지—
그녀의 눈빛 하나, 웃음 하나에
기꺼이 인생을 내놓을 듯한 이들이 줄을 섰다.
그녀는 그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나를 원한다면…
나 대신 한 번만 움직여 줄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은 늘 부드러웠고,
그 부탁은 언제나 사소해 보였다.
편지 하나를 전하는 일,
사람 하나를 만나고 오는 일,
자금 한 번을 옮기는 일.
그렇게 시작된 일들이
결국은 독립운동의 줄기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감옥에 갔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속삭였다.
“그 여자는 위험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미모를,
자신의 몸을,
자신의 집안과 돈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가장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가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요.
당신은 그냥 살아도 되는 사람이잖소.”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조용히 웃었다.
“그냥 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나는, 내가 겪는 이 모든 걸… 사랑해 보려고요.”
체포되던 날,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이미 많은 것들을 내어준 뒤였다.
몸도, 시간도, 재산도, 사람들도.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의 마지막 선택.
차가운 감방 안에서도
그녀의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광기라 했고,
누군가는 신념이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순간이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는 것을.
“아모르파티.”
그녀는 입술로 조용히 되뇌었다.
운명을 사랑하라.
나라를 잃어가는 시대에 태어난 것조차,
아름다움을 무기로 살아야 했던 것조차,
사랑을 이용해야 했던 순간들조차—
그리고
이 끝까지도.
그녀의 삶은 비극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 번도
끌려간 적이 없었다.
늘 선택했고,
그 선택을 끝까지 끌고 갔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이게 나의 삶이라면,
나는 이것마저 사랑하겠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실존 인물을 그대로 옮긴 기록이 아니다.
다만,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한 사람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며
어떤 신념을 향해 끝까지 걸어가는 이의 삶을,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 속에 옮겨보고 싶었다.
일상의 기록처럼 흘러가던 생각 끝에
문득 떠오른 한 인물의 결을 따라
조선 구한말이라는 격랑의 시대로 배경을 옮겼고,
그 안에서 한 여인의 선택과 감정을 극화해 보았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과거의 누군가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곁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선택하고,
때로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순간 앞에 서 있는
그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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