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그네

가난과 우정 속에 음악을 피워 올린 생계형 천재 작곡가 슈베르트

by 이제이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가난과 우정 속에 음악을 피워 올린 생계형 천재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는 빈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로, 낭만주의 음악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지만 생전엔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그는 베토벤과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그처럼 귀족 후원을 받지도 못했고, 거대한 후원자도 없었다. 그의 삶은 철저히 생계를 위해 곡을 쓰는 작곡가, 즉 '생계형 음악가'의 길이었다.




가난한 교사 집안에서 자란 음악 천재

슈베르트는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린 시절 교사로서의 길을 준비했지만, 음악에 대한 재능은 일찍부터 두드러졌다. 빈 궁정악단의 소년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며 음악 교육을 받았고,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16세 무렵부터 아버지의 학교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작곡을 했다. 이때 이미 교향곡, 실내악, 가곡 등 다양한 장르를 작곡했지만, 그의 작품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생계를 위한 작곡, 그리고 ‘우정’의 서클

슈베르트는 가난했지만, 친구들은 많았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음악을 아끼던 문인들과 화가들, 예술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슈베르티아드(Schubertiade)’라 불리는 사적인 음악회와 모임을 자주 열며 그의 음악을 퍼뜨렸다.
출판사를 통해 가곡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 애썼고, 때론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그는 말년까지도 출판사나 후원자에게 곡을 팔거나 의뢰곡을 작곡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 때문에, 슈베르트의 곡 중 많은 수가 급히 쓰인 흔적이 있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감성과 구조적 완성도가 담겨 있다.




가난, 병, 그리고 31세의 짧은 생

슈베르트는 1822년경부터 매독에 감염되어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대표작인 '겨울 나그네(Winterreise)', 'C장조 대교향곡', '피아노 3중주', '피아노 소나타들', 그리고 미완의 작품인 '미완성 교향곡' 등은 말년의 결핍 속에서 탄생했다.
죽기 1년 전, 베토벤의 장례식에 초라한 차림으로 참석한 슈베르트는 “언젠가 나도 그 옆에 묻히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그는 베토벤 곁에 묻혔다.




생전에는 찬밥, 사후에는 거장

그가 죽은 뒤에서야 그의 작품들은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특히 브람스와 슈만 같은 후대 작곡가들이 그의 작품을 재조명하면서, “가곡의 왕”, “진정한 낭만주의의 선구자”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슈베르트는 대중적 성공과 후원자의 보호 없이, 극도의 가난과 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곡을 쓰던 생계형 작곡가였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철저히 삶을 견디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인간 내면의 깊이를 담아냈기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이 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은
「Winterreise (겨울 나그네)」 중 'Der Lindenbaum(보리수)』입니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말년, 병으로 고통받던 시절에 작곡한 연가곡으로, 외로움·상실·삶의 무게를 짊어진 나그네의 여정을 노래합니다.
그중에서도 '보리수(Der Lindenbaum)'는 잠시 따뜻한 기억에 기대지만 결국 다시 차가운 현실 속을 떠나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담고 있어요.
이는 가난과 병 속에서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던 슈베르트의 삶과 절묘하게 겹칩니다.



감상곡 추천 링크

https://youtu.be/jyxMMg6bxrg?si=PhJyxNjf8BtzqCX0





《겨울나그네》

한밤중, 창밖엔 눈이 내리고
세상은 조용히 나를 밀어낸다.

한때는 노래였고
한때는 친구였으나
지금은 내 그림자조차 나를 피한다.

보리수 아래,
따스했던 기억이 나를 부르지만
나는 멈출 수 없네
내 발은 더 깊은 어둠을 향해 걷는다.

가난은 내 침대요,
병은 내 벗이 되었고,
음표는 내 피와 눈물로 찍혀갔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모르고
내 노래는 종이 위에 갇힌 채
햇살을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겨울 끝에 봄은 오리라는 것을.
지금은 울어도
언젠가 이 길 위의 노래가 누군가를 따뜻하게 하리라.

그래서 나는 걷는다.
어둠 속에서도,
음악의 불씨 하나 안고
이 겨울을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