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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i Mar 16. 2020

마와 소 이야기

소진에게

소진에게,


소진은 나에게 안구건조증에 대해 글을 한 편 써보라고 했다. 자주 깜빡이는 나의 눈에 대해서, 시시때때로 건조해지고 빠질 듯 뻑뻑한 나의 눈에 대해서. 여태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기에 이 글에는 ‘소진에게’라는 제목을 붙인다.


 * 안구건조증은 어린 시절부터 있던 병이다. 내가 십 대 초반이었을 때, 나를 진찰한 의사는 내 눈의 안압眼壓이 남들보다 높다고 했다. 눈물이 별로 없고 눈알이 바싹 말랐기 때문에 인공적인 수분이라도 투여해야 한다고 했다. 

 안구건조증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한 여자(혹은 남자)에 의해 외지의 조그만 마을로 떠난 남자(혹은 여자)에 대해 떠올렸다. 괄호에서 이미 밝혔듯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인지는 상관이 없다. 나는 인물이 여성 혹은 남성이기에 필연적으로 이뤄지는 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소설 속 인물들도 본인들이 여성 혹은 남성이라 생生이 바뀌는 일을 원치 않는다. (과연 현실에서 그게 가능한가의 논의는 접어 두더라도.) 그렇기에 한 인간 때문에 외딴 마을로 좇긴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 표현하는 게 가장 적절하겠다. 편의상 마을로 떠난 인물을 ‘마’, 그를 보낸 인물을 ‘소’라고 일컫겠다.


 마는 소를 사랑하고, 소는 마에게 부탁한다. 그중 하나가 먼 외딴 지역-모국어도 통하지 않고 낯선 문화들로 가득한 지방에 가서 몇 달을 살아 달라는 것이다. 

 부탁의 이유는 알 수 없다. 소를 사랑하는 마는 연인 곁에 머물고 싶지만, 소의 부탁을 거절하지도 못한다. 마는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넌다. 붉고 녹슨 기차를 타서 초원과 깎아지른 협곡을 지나 조그만 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피부가 검고 쌍꺼풀이 짙다. 담은 모두 회색 돌을 쌓아 만든 것이며 집들은 단단한 나무로 지어졌다. 물살이 센 강이 마을을 관통하며 흐른다. 평지에는 연두색 풀숲과 희고 조그만 꽃이 피는 나무가 자란다. 마는 소에게 편지를 쓴다.

 “안녕, ‘소’. 당신이 소개한 마을은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제게 친절하며, 외지인에게 큰 호기심을 보이는 분위기입니다. 외국인이 마을에 홀로 찾아온 것은 몇 년 만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서투른 영어로 제게 얼마만큼 여기 머물 것인지 묻습니다. 제가 세 달이라고 대답하면 모두가 놀랍니다. 이는 당신이 말한 숙소(붉은 벽에 하얗게 그려진 소 무늬, 맞지요?)의 주인부터 새로 사귄 친구들까지 모두 동일하게 보이는 반응입니다. 그들은 제가 아주 돈이 많거나 지질한 한량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당신의 부탁에 대해 말할까 관두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 한동안은 마을을 산책했습니다. 북쪽과 서쪽은 구불구불한 길을 통해 하늘을 가린 잿빛 돌산으로 맞닿고, 동쪽은 강물을 따라 차들이 오는 도로로 갑니다. 남쪽에는 거대한 과수원이 있습니다. 여인과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과일을 따고 있습니다. 

 이런 풍경들은 제게 하등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을 보든 저는 당신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떠올린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내 눈으로 보는 모든 곳에 당신이 묻어납니다. 나는 당신을 원망하거나 이해하려 애쓰다가 마침내 세상의 주변을 맴도는 당신을 지켜보기로 결심합니다. (……) 왜 제가 이곳에서 벌 아닌 벌을 받는지 여태 모릅니다. 왜일까, 왜일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눈이 아닌 머릿속으로만 보는 게 과연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편지를 보내고 한 달이 지난 뒤, 마는 연인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인지 의심한다. 어디에나 보이는 소가 실은 어디에도 없을지 모른다는. 이 불안감이 그(녀)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마는 눈앞의 풍경을 믿을 수 없고, 소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다. 약속한 시간에 이르기 전 마는 흙먼지가 휘날리는 작은 기차역에 간다.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그는 붉은 기차를 잡아타고 떠난다. 서둘러 배를 예약하고 바다를 건너는 데 또 몇 주가 걸린다. 돌아오는 마는 한 때 익숙했던 거리, 잘 짜인 길과 계단을 오르는 데 애를 먹는다. 그 모든 게 스스로 꾸며낸 풍경이 아닌지 의뭉스러웠던 까닭이다. 

 집 앞에 도착한 마는 열쇠를 찾아 허둥거린다. 뒷주머니에서 납작하고 차가운 열쇠의 감촉이 손바닥에 퍼지고, 그제야 그는 안심할 수 있다. 문을 열고 걸음을 크게 내며 안으로 들어간다. 소는 그 안에 잠들어있다. 침대에서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아직 밝은 하늘의 빛을 얼굴에 내리쬐며. 마는 그(녀)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가고 한참 들여다본다. 마는 자신이 외딴 마을에 있는지, 평생을 살아온 집에 있는지, 과수원의 나뭇잎들에서 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지, 실제 소를 보는지 알 수 없다. 마는 눈을 깜짝거린다. 그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잠든 뒤의 속내인지 손바닥을 밀면 따끔거림과 함께 흉터로 남을 실재인지 알기 위해 신경질을 내듯 눈을 껌뻑거리고 깜짝거리기를 반복한다. 


(20161022,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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