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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08. 2024

제주에 살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그리고 진행 중인 이야기

  해안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던 아스팔트 길. 검은 밤 아래 더 짙게 녹아 흐르던 바다. 그리고 오지은의 노래.

‘제주에서 살아야겠어.’ 선언하듯 공기 중에 다짐어린 치기를 내뱉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내게는 8년을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갑자기 십여년이 지난 이를 꺼내는 것이 부끄럽고 이상하지만 내게 있어 제주는 그 아이를 논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해해 주시기를.(편의상 그를 J라고 하겠다.)


  J와 3년 쯤 사귀었을 때 J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제주로 내려왔다. 당시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제주는 어찌 보면 나라의 끝이었지만 그가 제주로 가는 것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학 시절에도 J는 학교의 특수성 때문에 평일에는 기숙사에 머물어야 했고 주말에만 만날 수 있던 것에 익숙했던 터였다. 더군다나 그때 나는 아침이면 지하 세계의 뱀에게 먹혀 다시 길다란 도시의 뼈 속으로 들어가기 바빴으며 밤이면 달과 별 대신 네모낳게 재단된 밤하늘을 이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회 초년생이었으니까. 제주도야 뭐 비행기만 타면 한시간이면 가니까.


  두세달에 한번씩 J를 만나러 제주에 내려오면 J는 나를 데리고 이곳 저곳 맛집과 여러 관광지들을 데리고 다녀 주었다. 산굼부리며 안덕계곡, 송악산(아 그땐 송악산 중턱까지는 차타고 올라갔었는데…), 어진이네 물회, 유리박물관, 심지어 제주 빕스까지… 감히 이제와서 고백하건데, 그때의 제주는 재미없었다. 아니 의미없었다는게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내게 그날의 제주는 그냥 J가 견뎌야 하는 인고의 시간에 대한 배경에 불과하였으므로.


  그런 그와 헤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모르는, 탑동 앞 즐비하던 트럭 포장마차에서 파는 고갈비를 함께 먹었던 그와. 병역을 마치고도 몇년을 싸우고 울고 웃고 안았던 그와.


나는 한동안 남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제주도가 미웠다.


TV에 나오는 제주 풍경은 모두 J와 가봤던 것만 같았고, 2년 동안 겪었던 제주의 모든 계절이 기억에 찬란하게 박혀서 괴로웠다.


  그렇게 아주 절절한 깨짐을 겪고 나서 이른바 ‘극복’을 위해 친구와 단 둘이 떠난 제주 여행에서 갑자기 ‘제주에서 살아야겠어.’라는 선언이 나온 것이었다.


  제주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정처없이 서쪽부터 제주를 빙 둘러 발길 닿는데로 흘러다니면서 나는 바람이 되었다가 나무가 되었다가 숲이 되었다가 노래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여행이 몇년도의 어떤 계절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친구가 해안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면서 요즘 좋아하게 된 노래라면서 들려준 오지은님의 멜로디가 정말 멋들어지게 그 순간을 진동시켰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 발 아래로 깔린 오름과 밭들을 보면서 다짐했었다. 40살이 되면 꼭 내려와서 살겠노라고.


  이렇게 빨리 내려올 줄은 몰랐지.


  2015년 9월. 나는 한 취업 온라인 까페에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직종의 구인 광고를 운명처럼 마주하게 된다. 단 하나 망설여졌던 것은 근무지가 ‘제주’였다는 것. 다짐은 했었지만 이렇게 빠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익숙함을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에 나를 던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쨌든 두려움이야 붙고 나서 마주할 일. 그런데 여러분도 그런 느낌을 받은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어떤 강렬한 생각을 확신하게되는 그런 순간 말이다. 면접을 보고 시험장 문을 닫고 나온 그 순간 나는 내가 제주로 갈 것임을 확신했던 것 같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 주변의 몇 기혼자들은 배우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고 했다. ‘아. 이사람이랑 결혼하겠구나.’ 하고. 그때 기분이 그런 느낌이었다. ‘아. 나는 제주에 가서 살게 되겠구나.’


  이제 J를 언급한 짓에 대한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최종 입사자 발표일 아침에 꿈을 꾸었다.  J가 나오는 꿈이었다. 그는 선한 에머랄드 색 옥가락지를 내 다섯 손가락에 공들여 끼워주고 있었다. 다른 어떤 말도 없었다. 언어적인 스토리텔링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무성영화처럼, 그는 침묵의 공간 속에서 나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푸른 산을 닮은 옥가락지를 밀어넣고 있었다. 나 또한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꿈 속에서도 그와 헤어진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내게 돌아오겠다는 건가? 무슨 의미지? 아. 그 꿈에 목소리가 하나 등장하긴 했다. 내가 했던 단 하나의 문장. “예쁘다. 고마워.”

  그렇게 꿈에서 깼다. 깨고 나서는 명확하게 ‘아. 나 붙었나 보구나. 이제 나는 진짜로 제주에 가서 살게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수험번호를 넣었을 때도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그건 그저 확인의 과정에 불과했다. 마치 동사무소에서 나의 등본을 떼는 것처럼.


  그렇게 제주에 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느 순간 자리가 만들어졌으며, 바닷물이 때가 되면 달의 인력에 이끌려 먼 바다로 끌려나가듯 나도 자연스럽게 이곳에 살아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제주는 내겐 운명 같은 것이다. 시절인연일지, 평생의 운명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나는 제주 안에서 태양을 10번째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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