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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Jul 23. 2024

The 8 Show

캐나다 영주권과 시민권이 갖는 가치는?

층을 바꿀 권리 '만'을 10억을 주고 구매한다, 그리고 추 후에 몇 층으로 갈지 추가로 구매해야한다.





문제는 모두가 추가금이 부과되어야 자신이 원하는 층으로 이동할 수 있음을 모른채로 1차금액을 겨우 모아 덜컥 한번에 10억을 지불해 버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추가금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10억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곳으로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판타지인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The 8 show를 두번째 관람했다.

첫번째 관람은 막 드라마가 나오자마자, 총 8편을 최고속으로 정주행했을 때이고, 이번 일주일에 걸쳐 두번째 관람을 마쳤다.

총 8편 중, 단연 가장 깊은 인상을 준 편은 마지막편이었다.


(스포포함) 자신의 다리가 불편해 선택권이 있을 때에도 1층을 선택했던 아저씨는, 배정된 방에 도착하자마자 층을 바꿀 권리를 문의했었고, 그 비용은 아저씨가 게임을 지속하는 목표가 되었었다. 10억을 위해 아저씨는 가진 불평등을 견뎌내고, 참아내고, 심지어는 불평등이 지속되는 시간을 벌기위해 모두의 배설물까지 자신의 방에 모으는 어려움을 견뎌 내었다. 뜻하던 10억을 모아, 티겟을 산, 그,

게임 참여자 중, 가장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셨던 1층 아저씨께서 극 중 가장 밝고 희망찬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로 전송된 편지를 뜯어보는 장면



편지안에는 안내서가 들어있었다. 10억을 내었으니 보여준다는 것이 고작, 이제부터 각 층을 살 때 지불해야하는 금액이 명백히 써 있는 종이였다.



모두가 선망하는 8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3천4백억이 필요하다. 고작 바로 윗층인 2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2백억이다. 1층 아저씨의 목표금이 10억인데, 8층은 물론 2층으로도.못



뒷통수를 한대 탁 맞은 것 같았다.



행복한 삶을 위해 캐나다 이민을 온다. 영주권만 따면 행복이 보장되어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영주권을 따지만 그건 영화에서 층이동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1차 비용인 10억과 마찬가지로 1차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그 다음 어떤 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만일 영화 속 그가 10억을 내고 윗층으로 도전하지 않는 대신, 그 돈을 갖고 자분히 앉아 시간이 갈 때를 기다려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면 어땠을까?


물론 결론적으로 아저씨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고, 7층 아저씨의 도움으로 가족은 생명보험 보상금은 비교도 되지 않은 돈을 받아 편안하게 여생을 살 수 있었다는 줄거리로 영화가 막을 내리지만, 우리의 삶에는 30대의, 안경을 끼고, 머리와 말투가 뻣뻣하나, 나와 내 가족에게 보상금을 떠안겨줄 7층아저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주권만이 10억 즉,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데 드는 비용일까?우리의 삶 모든 곳에 10억 초기비용은 존재한다. 그 보다 더 큰 실질 비용의 존재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들은 바가 없다.



우리가 행복을 꿈꾸며 사는 집, 캐나다나 호주 뉴질랜드 미국 영주권과 시민권, 원하는 대학 입학, 대기업입사, 결혼, 특정지역입성 그것도 부족해 자녀를 위한 조기교육에 쏟는 모든 비용들. 이뿐만 아니라 로스쿨 입학과 졸업, 의대 입학과 졸업, 불임극복.... 모두다 우리 삶의 1차 비용인 셈이다.



 이후에는 그에 더해, 반드시 각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차등 비용이 발생한다.


산 넘어 산, 우리들의 인생인가보다.


10억을 지불하고, 이제 1층 아저씨에게 남은 돈은 80만원 뿐인데, 아저씨는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하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른사람들이 2만원, 3만원, 5만원, 8만원,13만원, 21만원, 34만원/ 시간당 벌때 아저씨의 시급은 1만원인데, 그것도 8층사람이 2시간만에 벌 수 있는 돈인 반면 아저씨는 총 80시간을 견뎌가며 모은 돈인데, 80시간 분의 노동값 80만원으로, 8층의 경우 2720만원/80시간,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식의 드라마를 보면 감탄스러운 것이,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미국에서나 어디서나 통하는 규칙...



캐나다로 온 이민자들도 각자의 영어능력, 직업, 경제력, 성격 등의 형편에 따라 서로 다른 층에서 게임을 시작했을 것이고, 모두는 각자가 시간당 벌어들일 수 있는 시간 즉 효율성에 곱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족직군이라 불리며, 세상에 힘든 일을 도 맡아하는 것이 똥주머니를 받아가면서라도 이 나라에서 버티는 1층 아저씨와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 원어민 영어사용자가 1걸음갈때 우리는 10걸음을 가야 겨우 따라 잡을 수 있고, 그 만큼 몸도 마음도 힘들어야 한다는 뜻인데, 힘듦이 삶을 지배하는 것 만큼, 가족과 행복할 시간을 희생해야한다는 뜻일텐데, 원어민과 같은 시급을 받는다고 한들 과연 그것의 효용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원어민의 10만불 융자가 비원어민의 10만불 융자와 같을까? 어떠한식으로든 개인적 의미로서의 성공을 거둔다면, 과연 그것의 가치가 고국에서의 가치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에게는 물론 힘든만큼 가치가 클테지만, 사회적 가치로 환산했을 때를 말한다.








정신차리자!

가만히 보니 우리에게 허무주의를 심어주고자 노력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올라갈 권한을 얻는데, 드는 비용만 10억이니 깝치지 말라 사다리를 뻥 차는 드라마였던거다.


1. 나는 초기에 10억의 비용을 쓰지 않았다. 비행기값 이외에는 한국거주비용에 추가적으로 든 캐나다 거주비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식이나 집값, 자동차비용, 품위유지비등이 현저히 낮았다. 나는 영어를 처음부터 잘했으니, 그 흔한 대학준비 인텐시브 과정도 스킵했으니, 영어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 에너지가 없었다.  내가 특별히 천재라서냐? 아니다. 공교육 이외에 특별히 영어사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어학연수나 유학을 다녀온 적도 없었다. 단지 선천적으로 소리를 잘 듣고, 글을 쓰는 것처럼 글을 읽고 말하는것을 엄..청 좋아한다. 조금만 화나면 입에 모터가 달리고 머리가 맑아져 갑자기 말이 너무 많다. 이력서만 뿌리면 바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봤으며, 첫인상이 맘에 들어 채용하고자 하는 곳들이 많았었다. 심지어는 다른 곳에 빼앗길까봐 불안하니 원하는 금액을 부르라는 곳도 있었다. 한국에서 내가 그런 대접을 충분히 받을까? 물론 동종업계라면 가능하다만, 어떤 분야에서나 노력하면 가능한 20대 중후반의 나이는 지난지 오래이다. 후배가 30대 후반이라면 내가 30대 초반선배라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인데 20대 중반 또는 후반의 신참예비 후배들을 두고 굳이 나를 뽑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나라에서는 나이를 궁금해 하지도 않고, 내 얼굴을 보면 동양인이라서인지 아직도 20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주름도 없고, 흰머리도 없으며, 피부도 두껍고 탱탱하다. ...아직은.(사실무근, 그냥 그렇게 믿어두자!!)


남편이 10년동안 한국에서의 연봉대로 일을 못했으니 10억연봉이 깎였다고 말해도 되겠다. 하지만 그 10억을 한국에서 벌었다면 우리는 집과 이자값 먹고사는 비용으로 썼을거다. 그리고 남편은 스트레스로 노쇄했을 것이다. 편의점 알바하던 류준열이가 3층이었으니, 외국계기업 직원, 대학기관 직원이었던 나와 남편은 아마 4층정도에 속해 살고 있었을까? 10여년이 지난 지금쯤 과연 몇층정도로 올라탔을까? 4층에서 5층에 가려면 얼마가 필요했을까? 아니 층간 이동이 가능하긴 했을까? 그런거 없이 하이어라키를 박차 버린, 캐나다에서의 삶의 질과 수준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별 다를것이 없었고, 아직도 우리는 한국에서 처음 올 때 가져온 잔고와 (인플레이션 반영) 별 다를 것 없는 돈을 예치하고 있다.


2. 한국에서의 돈 가치는 이 곳에서의 돈 가치에 비해 현저히 낮다. 물가가 비싸다.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기위해 구입한, 손바닥 반 만한 소고기 한 덩이가 3만원이었던 15년전 한국에서의 생활비용을 기억한다.  여기에서 어림잡아 30불이면, 그 3배 이상 크기의 알버타산 소고기를 구입할 수 있었던 15년 전이다. 과일도 너무 비싸서 살 때마다 부담스러웠었던 한국에서의 청과물 쇼핑이다.


3. 인건비에 관련해서, 한국보다 이 곳의 인건비가 더 높다. 15년전에는 인건비가 생활비 비례 한국 서울보다 2배 높았고, 노동강도는 1/3이었음을 기억한다. 지금은 한국의 인건비가 예전에 비해 많이 올라갔음을 안다. 하지만 집값(융자값)은 훨씬 더 위로 뛰었기때문에 인건비의 증가는 사실상 명목뿐이다. 한국 독자분들께 유감이다.


4.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나는 며느리로서, 곧 입시를 앞둔 엄마로서 애들 학원 쫓아다니고 정신적으로 들볶이느라 사랑과 관심과 도움은 없이 마이너스만 넘칠 것이다.


5. 공기의 질. 우리는 서울 중심가 한복판에 살았었다. 그래서 항상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살았다. 우리 큰 아들이 1살에 캐나다에 왔는데, 그 때까지 우리 큰아들은 18개월동안 피부 아토피때문에 피지오겔을 달고 살았다. 몸에 좋지 않은 연고인줄 알면서도 간지러워하는 아이를 위해 통통한 볼떼기에 매일 떡칠해줬었다. 현재는 한국공기, 미세먼지와 황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캐나다에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공기질이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청량청량 좋고, 습도가 적당해 여름에도 산불이 없고, 겨울에도 건조가 없다.







물론 이 곳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위 사진속 가격표처럼 각 등급이 할당된 비용과 에너지, 노력을 갈아 넣어야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이민자 1세대로서 아무래도, 고국에서보다 층당 이동비용이 훨씬 더 비싼 것은 사실일 것이다.


허나, 꼭 꼭대기층까지 올라가야할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하는 삶을 살되,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편안한 층에서 멈추어 즐기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한국에서 산다고 한 들, 내가 과연 꼭대기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 그건 사람들을 자극해,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정치전략이자 개인 판타지에 불과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의 하이어라키나 레거시도 그것을 신봉하고 따르는 사람들 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내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산다면, 그런 것도 따라주며 우월감또는 열등감을 느낄 필요없는 것 같다. 8층 게임은 사회의 하이어라키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게임규칙이라는 건, 게임을 하겠다고 복종한 사람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온전히 나만의 삶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위해 좋은 것들을 솎아내고, 그렇게 내게 의미 있는 삶, 내가 의미 있는 삶을 그렇게 만들어 갈거다. 그렇게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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