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라는 이름으로 찾아 온 너
Nathan의 눈동자 색깔 때문이었을까, 더 강해질거라는 나의 다짐과는 다르게 나는 봉사활동 확인서를 받은 그 날부터 사회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잘 해낼 수 있다는 생동감이 사라졌다.
나를 속상하게 한 '원어민보다 좀 더 잘 살거라는 (영어도 원어민만큼 잘하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도 빨리 자리잡으려는)' 기준은 나의 능력 +1000의 기준이었으므로, 각종 교육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효능성이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척도인, 내 능력+10을 압도하는 기대치였기에, 다소 급진적이었던 내 마음가짐을 외부 위협으로 인식한 두뇌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도전보다는 생존모드로 나 자신을 지키려 발버둥쳤을 때이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향상 시키기 가장 좋은 조건은, 자신이 능력보다 아주 살짝 웃도는 기준으로 도전이라는 것을 했을 때라고 한다. 약간 어색하지만 불확실한 상황을 한 단계 또 그 다음 한 단계 극복하면서, 기쁘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인데, 10이 아닌, 100도 아닌 1000을 해내라고 스스로에게 명령 하면, 머리는 그 순간 과부하되어 오히려 그나마 조금 있는 능력치마저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성격 탓, 기질 탓을 할 일이 아니라, 원래 인간의 두뇌는 그렇게 설계되어있으므로, 정말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 대한 학대를 이제 그만 멈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봉사활동 마감을 끝으로, 영어 세상으로의 도전에 대한 모든 의욕 또한 마감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지 맘대로 뱉고 다닌 영어회화의 가치 대한 회의가 생겼고, 열심히 노력해서 겨우 뱉은 말이, '아녕...하네요?' 라면... 서툰 그 말마저도 편치 않게 식은땀 뻘뻘 흘리며 살아야한다면, 캐나다에 한국어가 모국어인 내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시궁창인가 지하실인가 아니면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터널인가. 전쟁으로 나라가 사라져서 온 난민도 아닌데,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점점 올라만 가던 때에에,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배웠던 영어는 어디로 갔고, 이민 막 와서 사귀었던 외국인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은 모두 다 영어가 아니면 뭐였다는 것인가.
당시 나는 캐나다 고등학교 3학년 과정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받았던 좋은 피드백들은 전부 다 헛개비라는 것인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깨진독에 물 붓기라면 3040에 이민온 언니들처럼 애초에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될 듯, 영어를 배우지 않고 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 같았다. 영어가 필요하지 않은 일, 그야말로 나만의 한인 중심 비즈니스를 여는 것만이 내가 이 곳 다민족 국가에서 영어와 씨름하지 않고 소수인으로서 생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아닐까 하는 생각에 비즈니스 아이템과 매물을 신나게 알아보러 다니기도했다.
그 당시 내가 살 던 캐나다의 한 도시에는 몇 분의 상가 중심 한인 리얼터가 있다. 그 동안 살았던 도시들과 달리, 이 곳에서만큼은 복잡한 부동산 계약을 '한인' 리얼터들과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곳이 내가 찾던 그 지상낙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카페 매물 알아보러왔어요.
단기 이윤을 남기지 않아도 좋으니, 손해만 안보는 곳으로 추천해주세요.
비즈니스를 한다면서 이윤을 남기지 않겠다고 말한 데에는 나만의 목적이 있었다. 리얼터가 보여주는 몇 개의 매물이 있었으나, 로케이션으로 보나, 유동인구로 보나, 경영과 부동산 관점에서 봤을 때, 그리 유리한 입지가 아니었다. 나의 비즈니스는 항목 특성 상, 고객의 비즈니스에 대한 높은 선호도에 의해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어야했는데, 옆을 쳐다도 안보고 미친듯 운전해 통과해야만 하는 하이웨이 변 이거나, 어떤 곳은 바로 옆 건물에, 나의 해당 비즈니스와 겹치는, 그것도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이 넓은 경쟁사로 보이는 짱짱한 곳들이 있는 곳이었다. 빵빵한 출퇴근길 도로 옆 정차금지 표지판이 있는 곳을 내가 뭐하러 상가임대를 하나 싶은 곳도 있어, 그 리얼터를 제외했다. 비즈니스 초자인 나보다 더 상가계약하는 눈썰미가 없는 리얼터와 계약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며, 선한 마음으로 나에게 매물을 소개해주는 사람이 아니거나 혹은 일을 잘 할줄 모르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님에 분명했기 때문이다.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다. 아무리 외국인이며, 한 살 아이 그리고 뱃속 아이를 키워야하는 엄마라 시간제약이 붙긴 하지만, 열 몇살 아이들도 공부만 열심히 한다면 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 학점을, 나이가 먹어가며 자연스레 인지능력이 훨씬 발달한 스물 다섯살인 내가 누가봐도 좋은 점수 받는 것이 당연한 데, 자의식 충족감 그 하나만을 무기삼아 섣불리 이너서클로 들어오려고 했던 내 판단의 오만함, 한계를 철저히 깨달았다고나 할까. 나만큼 모든 과목 에이플러스 받는 아이들은 캐나다에 매 해 열 트럭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또 다시 열 트럭, 그 다음해에는 또다시 열 트럭...
내가 꼭 한인만을 고객으로 한 장사를 한다고 했나, 내 비즈니스가 마음에 든다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나의 영어가 그들이 말하는 영어가 아니라 해도, 그들이 필요하면 돈을 지불할거야. 나만의 왕국을 만들면 되지, 뭐하러 남들하는 공부를 똑같이 열심히 해서, 할 필요없는 경쟁의 반열에 들어가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힘들게 사나?그렇게 공부를 열심히했다고 해서, 그 후에 받는 월급이 인플레이션 대비 보상이 큰 것도 아니야. 월급받아 살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겠어? 절대로 공부만이 답이 아니잖아.
캐나다에서는 영어마스터가 유일한 길인 줄 알았는데, 그 끈을 놓치면 인생이 끝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보며, 인식 전환의 중요성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절망이 아닌, 논리의 얼굴을 하고 내게 온 그것은 누구라도 헷갈리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