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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Aug 25. 2023

다시 모래성을 쌓아 올리고

<두 번째 편지> 앞으로 나아가길 주저하는 당신에게



앞으로 나아가길 주저하는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어떤가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8월 13일 한여름이랍니다. 이립에 오는 길에 비도 오고 바람도 굉장히 많이 불었지만 그래도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예요.


 저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도민이랍니다. 아, 2년 전에 내려왔어요. 내려온 후 일도 찾아 일하고 친구, 이웃들도 사귀며 새로운 땅에 적응 중이랍니다. 제 편지를 고르신 당신은 누구이신가요? 이립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지금도 고민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나요?


 제게도 절 괴롭히는 고민이 하나 있어요. 들어주실래요?


 2년 전, 코로나가 짙었던 시기에 저는 대학원을 졸업했어요. 힘들지만 뿌듯한 20대의 장식 로고를 얻고 남들이 모두 알만한 곳에 취업을 했지요. 내 인생은 이렇게 늘 순탄하고 평화로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도전하기에 두려움이 없었죠. 그날도 '제주살이?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제주도에 내려왔어요. 미리 준비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제 마음가짐까지도요.


 당일에 숙소와 살 집을 구하고 집을 채워나갔어요. 3개월 동안은 굉장히 신났었답니다. 남들이 바라는 제주살이를 하고 있으니까요. 인스타에 열심히 즐기고 있는 모습을 올리면 눌리는 ‘좋아요'가 내 자신감을 채워줬어요. 5월의 어느 날 문득 혼자 남은 제가 거울에 보이더라고요. 마냥 신이 날 것 같았던 제주살이는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갔어요.


 친구들과 가족들을 보러 서울로 자주 올라갔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더라고요.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들은 번듯한 직장과 터전 안에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왜인지 저만 그 사회에서 도태되어 떨어져 있는 것 같았어요. 'OO이 결혼한대!' 'ㅁㅁ이 정규직 되었대!' 축하할 일들로 가득한 그곳에 제 자리는 없는 것 같았죠.


 내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도 설 자리가 있을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질문이라는 허물을 쓴 채 제 안에 살기 시작했어요. 겉으로는 행복한 척, 즐거운 척 하지만 다시 올라가서 시작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어요. 아니, 지금도 두려워요. 아직도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온몸을 휘감을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내년에 서울로 다시 올라가요. 하고 싶은 연구가 있거든요. 그 연구를 하기 위해 연구소에 취직하고 밤낮없이 살 수도 있겠지만, 다들 결혼하고 친구들과 여행 갈 때 저는 전전긍긍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명품백을 샀다는 자랑에 내 가방이 주눅 들 수도 있겠지만, 혹여 원하는 곳에 취업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해보려고요.


 언제까지 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는 걸 너무 많이 느꼈거든요. 나의 작은 깨달음이 당신에게 도약의 날갯짓이 되길 바라요. 언젠가 우리는 스쳐가듯 만날 수도, 같은 비행기나 공간에 함께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가 서로 누구인지 알 순 없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나와 당신으로 스치길 바라요. 다음에 또 만나요.


 2023년 8월 13일,

 16시 32분.

 당신을 응원하는 누군가가.



 To. 익명의 사람에게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 기분이 들 때 찾아오면 종종 시를 읽어요. 시는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니까. 아니, 진실도 진실이라 말하지 않으니까. 시를 읽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더 많지만 그런 이유로 읽는 게 좋기도 해요. 이해하지 못한 채로, 혹은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 않은 채로 놔두어도 되는 시만의 흰 여백이 있기 때문에요.


 오늘은 머릿속에 바다가 그려지는 어떤 시를 읽고 있던 참이었는데요. 머잖아 휘발되어 버릴 말을 주고받는 일이 마치 모래사장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는 일것 같다고 생각하던 순간에 밀려온 당신의 편지를 만났습니다. 꼭, 파도처럼 말이에요.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나는 당신과 같이 제주도에 살고 있는 도민이고, 이제 약 열흘 뒤면 이곳에 온 지 만으로 2년이 되어요. (믿기지 않지 않아요? 우리가 이곳에 온 지 벌써 2년이 되었다는 게!) 아무런 연고도 그럴듯한 핑계도 없이 무작정 내려온 후 일을 찾은 것도 그렇고요. 우리는 어쩌면 같은 섬에서, 그동안 비슷한 모양의 시간을 보내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립을 시작한 이유도, 나 또한 일을 찾아서 벌인 '일'이기도 했지요. 시간도 지났겠다,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말하면요. 실은 이립이란 이름은 처음부터 생각한 이름은 아니었어요. 어떤 누군가는 혹시 나이가 서른이라서 그 의미를 따와 이립이라 지은 건지 묻기도 하는데요. 그런 이유에서라기 보단 그냥 단순히 이립의 뜻이 좋아서 붙인 거였거든요. 스스로 자신의 뜻을 세운다는 이립의 의미가요.


  그래서 이 일을 벌인 다른 거창한 이유는 없었어도 바람이 하나 있다면 이 공간이 그런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스스로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요.


이립에 오는 길에 비도 오고
바람도 굉장히 많이 불었지만
그래도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예요.


 그래서인지 편지에 쓴 당신의 이 말이 나는 조금은 다르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이 문장에서의 이립은 꼭 장소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면서 궤적을 일컫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립의 나이에 다다를 때까지 이곳엔 비도 오고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당신의 말처럼 우리도 언젠간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짝꿍이 또다시 그을린 팔다리로
조개껍데기를 주워 성벽을 장식하면
나는 또다시 무너질 성을 생각했다

부서진 미래가 전부 바다로 쓸려 가 버리면
우리는 어떡할까


 한때 머물렀던 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 누군가는 곧 무너질 모래성을 의미없이 쌓은 것이라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서로의 얼굴도 나이도 모르지만 이 편지 안에서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당신에게 나는 알려주고 싶어요. 외따로 살며 겪은 당신의 고독과 외로움을 알아주는 이가 이 섬에 있다는 사실을. 세상의 수많은 풍파 앞에 이런 말들 따위는, 모래 위에 쓴 편지처럼 금방 지워질지라도 말이에요.


 제주라는 섬에 파도처럼 밀려온 당신은 이제 밖으로 나아갈 테고 나는 한걸음 더 안으로 들어가겠지요.

무한한 그 언젠가를 기다리고 싶어요. 어딘가로 돌아갈 당신과 이곳에 머물러 있는 내가 언젠가 바다에서 엇갈리듯 다시 만날 때를.


 무작정 잘 될 것이라는, 해낼 것이라는 그런 책임 없는 위로는 전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한 가지, 당신이 그 사실은 알았으면 좋겠어요.


 두려워도 한 발짝을 뗐으므로.

 당신은 이제 두렵지 않다는 것을요.


먼 미래를 걷는 것 같아
모래사장을 거닐며 짝꿍에게 말했다
우리의 미래가 이렇게 하얗고 곱다니
짝꿍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까마득한 미래에도 우리는 부서지고 있는 거냐고 묻지 못했지만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알알이 부서진 미래를 모아 성을 쌓았다
검은 파도가 금세 성을 집어삼켰다
다시 성을 쌓고 마을을 만들면 검은 파도는
우리의 발까지 집어삼켰다

짝꿍이 또다시 그을린 팔다리로
조개껍데기를 주워 성벽을 장식하면
나는 또다시 무너질 성을 생각했다
부서진 미래가 전부 바다로 쓸려 가 버리면
우리는 어떡할까

그러면 내 미래를 나눠 줄게
짝꿍은 두 손 가득 모래를 들어 올렸다
함께 꿈꾸면 그 미래는 커질까 아니면 작아질까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미래를 다 쓰면 너의 미래를 가져다 살게
다시 성을 쌓아 올리고

-박은지, <짝꿍의 모래>





* 편지를 쓰는 동안 들었던 노래를 소개합니다. https://youtu.be/-OueTxA7jyc?si=QkN8ek0plIu4s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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