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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Sep 01. 2023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세 번째 편지> 세상을 혼내주는 당신이 있어서 나는 살 수 있어요



page.1


순전히 제목이 좋아 책을 사는 날이 있어요. 좋아하는 작가라면 망설일 겨를 없이 더더욱이요. 그런 책 중 하나가 이 책이었는데요. 안희연 시인의 산문집,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이었어요.


그 문장을 만나고부터 나는 그런 연습을 하고 있어요. 내 안에서 흩어지는 마음들을 바라보며,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손을 꽉 쥐지 않는 연습. 이제는 안녕이라 말하며 쥔 손을 가만히 펴는 연습을요.


‘그런 이야길 하며 손을 바라보니 안녕이라는 인사가 왜 손을 펴고 하는 건지 알 것만 같아.’


오늘의 편지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page.2


편지 중에는 받을 수 있는 이에게 쓰는 편지들도 있지만 먼 곳으로 떠난 이에게 쓰는 편지들도 있습니다. 매일 편지를 받아 정리하다 보면 가끔은, 수신인과 발신인의 이름이 없음에도 서로가 인연인 듯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편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꼭, 편지가 편지에게 말을 걸 듯이 말이에요.


때로는 타인인 나는 그 어떤 말로도, 단 한 줄의 글로도 답장을 쓸 수 없는 편지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오늘은 답장을 미루어두었던 그 편지들에게,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그래서 위로해주고 싶었던 편지들로 긴 답장을 보냅니다.




나의 사랑하는 엄마, 옥정 여사에게.


엄마! 연휴 동안 재미나게 놀고 어제 집에 들어가니 보고 싶었다고 내게 말했지. 나는 그제서야 아차 싶어서 엄마를 끌어안고 뽀뽀를 쏟아부으며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이 불효자를 용서하라고, 들러붙어 귀찮게 했어.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웃고 있던 울 엄마. 사실 좋았던 거 다 알아. ㅎㅎ 부엌에서 아부지가 밥 차리는 걸 돕고서 엄마 몸을 살피니 생각보다 많이 안 좋아져 있어서 놀랐어. 내가 일도 바쁘고 주말에는 놀러도 가야 한다고 엄마를 자주 살피지 않았다는 게 정말 후회스럽고 이젠 자주 찾아봬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엄마 턱받이를 채워주고 밥을 먹여주는데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지. 그 한마디에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어찌나 보고 싶던지.


우리 옥정 여사! 오늘은 아부지랑 수목원에 갔다가 점심을 사 먹고 오랜만에 엄마를 보러 양지공원에 다녀왔어. 여전히 예쁘더라, 우리 엄마.


엄마!

또 꿈에 나와줘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2023년 오월,

막내 아들이.



오늘은 어땠어?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네가 오늘 점심은 잘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랑 먹었는지 엄마는 궁금했어. 너의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 편지를 쓰고 있으니 문득 너를 내 품에 안은 첫날도 생각이 나. 네가 너무 작아서 모든 게 조심스러웠지. 손바닥 안에 너의 작은 두 발이 들어오던 것도 기억이 나는구나.


너의 미소에 온 세상이 축제가 되기도 했지. 때로는 너의 눈물에 암전이 되기도 했어. 너를 만나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어설퍼서 네가 많이 눈물짓고 힘들어하기도 했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저 미안한 일들도 많았어. 이렇게 어설픈 나를 선택해서 태어난 나의 아이야.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엄마는 네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너는 내게 그저 축복이고 행복이란다. 네가 그저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바라. 나는 네가 내 아이라는 것에 참 많이 행복해. 그래서 또다시 부모와 자식의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면 꼭 그러고 싶어. 오늘 날이 좋고 한라산이 멀리 보이는 곳에서 네게 편지를 쓰는데 언젠간 꼭 너와 함께 와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2022년 12월 9일.

엄마가.



아빠, 엄마


어릴 때 이후로 처음 편지를 쓰는 것 같네요.

어릴 때 아빠가 엄격하고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무섭고 어려운 존재입니다. 요즘 들어서 아빠가 저희에게 노력하는 모습이 좋기도 하면서 어색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희에게 노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릴 때 제가 운동을 하면서 아빠와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운동할 때 아빠의 잔소리가 항상 듣기 싫고 그랬는데 이제 와서 깨달아요. 저희를 위해 한 말이었다는 걸. 그때 말을 잘 들었어야 했는데 이제 깨달아서 죄송해요. 제가 운동선수로 성공으로 보답해드려야 했는데 저희를 위해 시간과 돈 많이 쓰셨는데... 하지만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고 아빠, 엄마에게 효도할게요. 좋은 집, 차 마련해 드릴게요. ㅎㅎ


다음 생에도 저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주세요. 다음 생에는 운동선수로 성공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게요.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10년 후 나에게


옛날 어린 시절 뭔지 모르겠지만 난 그랬다. 자신 있게 굵고 짧게~ 딱! 33년만 살자~! 하지만... 지금 나는 50대 중년이 되었다. 첫 번째는 가수가 되고 싶었고 두 번째는 교수, 교사가 아닌 리더이면서 가르치고, 들려주 필요한 이에게 기부천사가 되고 싶었다. 지금 나는? 가수도 아닌 기부천사도 아닌 평범한 자영업자~  잘한 거라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삼 남매의 엄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그리고 소중하게 살아가는 모습의 자녀들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 보물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외에는 더 욕심도 없는 듯하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page. 3

그리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난 이에게 보낸 편지도 있었지요.



긴 헤어짐 인사도 서로 나누지 못하고 갑자기 가버린 나의 엄마. 벌써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어.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엄마의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어 먹으면서도 엄마의 부재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지. 애정하는 미역국을 마지막으로 먹으면서 아껴먹지 않는 나를 원망했었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나의 엄마.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지?

사랑한다는 말 자주자주 못했던 게 투성이로 자리 잡았어. 후회투성이…


사랑해.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어렸을 적 당신은 제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분이었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요. 그런데 추억이 있는 곳들 돌아다니다 보니까 계절마다 볼 수 있는 아름다움들, 재밌는 것들, 맛있는 음식들, 참 많이 보여주고 데리고 다녀주셨네요.


주말이면 엄마 아빠랑 소풍 다니고 등산 오르고 영화 보는 일상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휴무날에 쉬고 싶은 몸 이끌고 하루라도 함께 하려 했던 마음들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많이 깨달아요. 생전에 일찍이 깨달았더라면 다가가려고 노력을 했으려나요.


초, 중, 고 한 통씩 받았던 편지 내용이 전부 기억나는 거 보면 저도 아빠를 사랑했나 봐요.


벚꽃나무가 온통 선홍빛으로 물들면

꽃 한 송이 들고 찾아뵐게요.



보고 싶은 아빠에게.


이 편지지를 받고, 그냥 나에게 편지를 쓸까, 아빠한테 쓸까 고민하다가 아빠한테 편지 쓰고 있는 중이야. 막상 편지 쓰려고 연필을 잡으니깐 눈물이 나더라.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고마워서. 난 정말 사랑도 행복도 많이 받으면서 큰 것 같아. 그래서 이렇게 주변에 좋은 사람들에게 나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고 또 주고 하면서 잘 지내고 있나 봐.


지난 기간 동안 사실 정말 힘들었는데 그만큼 엄청 단단해지고 성장했어. 나 지금은 원하는 곳에 입사를 두세 달 정도 남겨두고 제주 한달살이 여행 와있다? 나 엄청 대담해졌지?



OO엄마


처음 올 때 둘이 오고

두 번째 올 때는 넷이 오고

어제 올 때는 그대는 멀리 두고

셋이만 왔네

많이 그립고 보고 싶고...


내년이면 예쁜 딸이 결혼도 하는데

OO이 엄마 손이 많이 필요로 하고

같이 준비하는 행복도 맛볼 텐데...


그곳에서도 잘 있는 거지,

항상 그립다. 보고 싶고...


그곳에서도 우리 예쁜 공주들

항상 생각하고 지켜줘.


2023. 12. 11

당신 남편이



page.4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던 때, 제주에 왔습니다.


이립이란 작은 공간에서 매일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다시 보내며. 어쩌면 한 번 스친 게 전부가 될지도 모를 인연, 그저 그런 찰나의 만남으로도 내 일생에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었죠.


그러나 스쳐지나갔던 편지를 붙잡아 이곳에 답장을 쓰면서부터 어렴풋이 알게 됐어요. 나는 이 편지들을 통해, 이제야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단 사실을요.


눈을 감고 생각해요.


언젠가 내가 꾸는 느린 꿈속에서 이름 모를 섬을 찾아낸다면. 꿈 속의 내가 그 섬에서 작은 편지 가게를 찾아낸다면. 나는 그 편지 가게에서 이런 편지로 글을 맺음하고 싶어요.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 남기는 편지의 첫번째 수신인이 되는 일. 그 일이 자꾸만 나를 한 번 더, 정말로 잘 살아보고 싶게 해.’


'

숲 속으로 나무들을 위협하듯이 들어가서

되려 사랑을 받고 돌아 나오는 날들의 연속


빨간 지붕집을 가진 누렁이보다

내가 더 크게 컹컹 울진 몰랐지만


삶의 무자비함을 느끼는 내 옆에 서서

나보다 큰 소리로 세상을 혼내주는 당신이 있어


나는 살 수 있었어요.

살아있을 수 있어요.




* 편지를 남겨주시고 촬영을 허락해 주신 익명의 발신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냅니다.

* 이 글을 쓰는 동안 노래를 소개합니다.

https://youtu.be/hmOOkmynj4A?si=EUzfweh6zQ6-Y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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