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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Jun 03. 2019

나는 얼마나 많은 의자를 아끼며 살았는가



마흔세 번째 마음,

부끄럽다



  집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중앙차로에 있는 큰 정류장이 아니라 도로변에 붙어있는 작은 정류장이다. 이 곳을 들르는 버스는 초록 버스 두 대. 운이 좋아야 버스를 바로 타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은 10분, 20분씩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을 마냥 기다린다면 꽤 불편하겠지만 스마트폰으로 버스 위치를 미리 확인하고 나가면 되는 일이라 그리 신경쓰지는 않았다.


  지난주 아침,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손에 든 짐이 많아 버스 시간을 확인하지 못한 채로 나왔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멀뚱히 기다려본지가 얼마만인지. 버스가 오는 쪽을 흘끗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흘끗 보다 문득 버스 노선도 옆에 놓여있는 작은 의자 하나를 봤다. 네 다리 중  짤뚱한 한 다리가 허공에 떠 있는 나무 의자였다.


  마침 짐을 든 손이 아파 어디 올려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누가 버린 의자인가, 생각하며 다가갔다. 반질반질하게 닳은 의자의 등받이에 종이 한 장이 붙어있었다. '노인들 셨다 가는 의자'. 비 맞아 찢어질까 테이프로 꼼꼼하게 붙인 종이. 매일 이 곳에서 버스를 탔는데도 몰랐다. 이 곳에 의자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구부정한 허리를 한 노인의 느린 걸음으로. 한 걸음에 하늘 한 번, 한 걸음에 땅 한 번. 그렇게 걷다가 이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셨을 테지. 나처럼,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가 오는 방향을 흘끗, 지나가는 사람을 흘끗. 땅딸막한 지팡이에 무릎을 기대다 이 곳에 의자 하나 있었 좋겠다고 생각하셨을 테다. 래서 다음에 다시 오는 길엔 잊지 않고 끌고 오셨을 테다시리고 아픈 무릎들 편히 머물다 가라고. 구부정한 허리로 한 걸음에 하늘 한 번, 한 걸음에 땅 한 번. 다시 그렇게 걸으며.   


  노인들이 편히 쉴 의자를 가져다 놓은 노인. 일 인분의 의자 옆에 서서 생각했다. 누군가를 위해 의자를 내어준 적이 나는 있던가. 같은 버스를 기다리는 같은 시간 동안, 나는 그저 내 갈 길만 생각하며 바삐 걸은 것은 아니었는지. 다른 사람을 위해 의자 한 번 내주지 않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본 자리에 제 역할 이상의 역할을 해내는 일 인분의 의자가 있었다.


  저 멀리, 버스가 온다. 느린 걸음의 시선을 따라 땅을 다보고 잠시 려다보았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의자를 아끼며 살았는가.

 

  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의자>, 문학과지성사






*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 말글 그리고 사진  your_dictionary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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