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이브)는 사악한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짓게 된다. 그 후 그들은 눈이 밝아지며 벌거벗은 서로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알게되었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중요부위를 가렸다고 한다. 그게 우리 인류의 옷의 시작이었다. 이후 하나님은 에덴으로 돌아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입히시곤, 그들을 동산 밖으로 쫓아내는 벌을 내리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세기 3:21)
혹자는 하느님이 지어 입히신 가죽옷이 구원을 상징한다 주장한다. 이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은 '인간이 스스로 지어 입은 옷'이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옷으로는 스스로 지은 죄를 구원할 수 없지만, 절대자이신 하느님은 가죽 옷을 지어 인간에게 입힘으로서 인간 스스로는 해낼 수 없는 구원을 예정하고, 계획하고, 또 구원을 행한다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옷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위 성경의 이야기처럼 옷은 본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시작되었으나, 사실 오늘 날 옷은 여러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멋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개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유니폼이라는 이름으로 소속을 표시하기도 하고, 때론 한 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백의민족(白衣民族), 우리 겨레를 상징하는 말이다. 실제 19세기에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한국인들이 흰옷을 입고 있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독일 제국의 항해가이자 상인이었던 오페르트(Oppert,E.J.)는 그의 저서 '조선기행 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Korea'에서 "옷의 색이 남자나 여자나 모두 희다"고 말했다. 또한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땅'(Le Temps,1829~1940)의 극동특파원이었던 라게리(Laguerie,V.de)도 “천천히 그리고 육중하게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고 전한바 있다.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는 조선을 넘어, 수천년 전의 고려와 신라, 부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색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구극(究極)의 색이자 불멸의 색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민족이 백의를 숭상함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그러한 것으로서 수천년 전의 부여 사람과 그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조에서도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고 그 유래의 오래됨을 강조하며 수천년 전 왕족들도 흰색을 좋아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은, 여러 타 국가의 침략과 이로인한 외래 의상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민족 고유의 하얀 바지와 치마, 저고리라는 의복을 고수하여온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흰옷이, 더욱 의미있던 날이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의 낭독한 독립선언서. 이는 삼천만 백의민족 모두가 하나되어 태극기를 손에 쥔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만들었다. 그 날 우리는 하얀 옷을 입고,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두려움도 잊은 채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조국을 상실한 식민지의 국민들은 거리에 나와 울분을 토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고, 그들의 피와 땀이 양분이 되어 지금 우리의 조국을 일궈낼 수 있었다.
옷은 정체성을 상징한다. 한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 민족의 고유성을 반영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1919년의 어느 날, 흰 옷은 저항의 상징이었다. 모두가 함께 입었던 하얀 옷, 같이 외쳤던 대한 독립 만세. 그리고 그들의 희생은 후손인 우리에게 구원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피땀흘려 만들어낸 이 땅을 내가 밟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