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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Feb 26. 2022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면 개츠비가 가진 뒤틀린 욕망을 잘 알 것이다. 그는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불법적인 행위로 막대한 부를 얻으려 했다든지,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에 속한 데이지를 '감히' 원했다든지 하는 점은 이 개츠비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가진 숙명적 파멸의 원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째서 모든 노력하는 이의 성공을 보장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개츠비의 꿈은 별이 되지 못하고 '야욕'이자 '욕망'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왜 그는 사랑하는 데이지를 위해 그의 모든 것을 걸었음에도 파멸을 면치 못했는가. 나는 항상 이 작품을 읽으며 그의 헛된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마음이 아파 견디기 힘들었다.


'위대한 개츠비' 최고의 작품  하나임과 동시에 대면하기 힘들었던 이유개츠비가 가진 캐릭터적 성격 결함이 내게 있는 그것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나 이미 주어져 있는 많은 것들을 바꾸고 싶었다. 사회적 위치, 외모, 경제적 기반에서 모두 타인보다 우월하고 싶었다. 위대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위대한 삶이라는 것은 의지만 있다면 언제나 가질  있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허락되어 있을 것이라는, 다소 건방진 생각을 품었다는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성향인지   없었다. 부모님도 강요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반드시  되어야 한다' 강박에 언제나 신열처럼 들떠 일을 과도하게 하거나 목표를 너무 높게 설정하곤 했던 것이다.


이런 성향과 관련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있다. 책장 앞에서 엄마가 사준 세계 위인전집과 한국 위인 전집 목록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있었다. 에디슨, 고흐, 나폴레옹, 장영실, 박정희...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나도 위인전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내 존재의 애틋함이 죽음으로 단절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 소중한데, 사라져야만 하다니.'  

위인전에 가장 많이 있는 직업군이 '화가'나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혹 고흐 같은 사람이나 이중섭 같은 인물의 천재성을 동시대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나의 꿈은 화가보다는 과학자로 설정되어 있었다.

아빠에게 아직 만들어지지 못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이냐고 물은 것도 그즈음이다. 아빤 '타임머신'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 여행할 수 있는 기계라고 했다. 당시 세상이 너무 쉽기만 했던 난 스스로를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는 과학자로 자라게 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귀여운 꼬마의 꿈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이 앙증맞은 꿈이 단순히 아이들이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라 개츠비의 야망과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된 것일까. 왜 난 어린 시절을 돌이키면서 그건 꿈이 아니라 욕망이라고 느낀 것일까.


그건 그 소망이 타인에 대한 우월감과 '나만은 달라야 한다'는 특권의식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명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소시민적인 엄마, 아빠의 삶을 경멸했다. '예전에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라는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할아버지 세대의 성공 신화가 정말로 너무 지긋지긋했다. 손에 쥘 수 없는 과거의 영광에 젖어 사는 것이 한심했고 집에 대한 이런 반항심이 커질수록 무엇이든 내가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더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내가 실패를 할수록, 그리고 내 위치가 원하는 욕망을 이루기에 턱없이 부족하단 사실이 구체화될수록 현실을 더욱 강하게 부정했다는 데 있다. 언제나 더 큰 것, 더 화려한 것으로 마음이 쏠렸다.


개츠비는 이런 내 모습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작품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면 언제나 '뒤틀린 욕망'이라느니 '과도한 집착'이 그가 가진 숙명적인 파멸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삶도 언젠가는 개츠비의 그것처럼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타인의 시선에서 나의 내밀한 욕망을 감추는 데 성공했다는 감각마저 나의 착각이었다니.


영어 교사로서 아이들과의 수업에서 이 작품을 텍스트로 선정한 데는 이런 이유가 컸다. 개츠비를 보며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있지 못한 나에게 벌을 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거대한 물결 속에서 떠다니는 부표처럼 살아가는 나를 꾸짖고 싶었다. 매 시간마다 희열과 고통이 동시에 느껴지는 아이러니


그러던 어느 마지막 날의 일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화려한 파티라고 했고 어떤 아이들은 데이지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했고, 또 어떤 아이는 개츠비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장면이라고 했다.


그러다 단단한 눈빛을 가진 한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You're worth the whole damn bunch put together.
(당신이 저 사람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나아요.)

닉이 개츠비가 죽기 직전 그에게 전화로 남긴 말이었다. 수 십 번을 읽고 지나쳤던 문장이었는데 아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자 순간, 명치가 쿡 쑤셨다. 나를 너무 붙잡아주는 것 같아서, 나를 너무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시도하는 많은 것들이 나의 허황된 꿈에서 기인한 것일지라도, 평생 잡을 수 없는 별빛 같은 것이라 해도 괜찮다는 말인 것만 같아서, 나를 믿어주겠다는 말인 것 같아서.

너무 슬프면서도 너무 행복했다.


함께 읽고 가르치는 속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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