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4 10:58
지난 일요일, 스펙트럼 spectrum 두 번째 호의 마감을 마쳤다. 변명의 여지 없이 나 때문에 늦어진 마감에 정말로 다음 호부터는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약 서른 장 정도 늘어난 분량에는 지난 호보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담았다.
어제 아침에는 스펙트럼에 깜빡했던 짧은 글로 허둥지둥했지만, 마음만큼은 모처럼 적적한 날이었다. 안국동 엠엠엠지 mmmg 카페에 갔고, 명동까지 걷고, 한남동에 새로 생긴 편집매장 프로덕트 서울 Product Seoul과 포스트 포에틱스 post poetics에 갔다. 아리 마르코플로스 Ari Marcopoulos의 사진집 <디렉터리 Directory>를 샀다. 아리의 사진집은 미국 출판사 리졸리 Rizzoli와 스위스의 진 zine 전문 출판사 니브스 Nieves가 공동 작업한 결과물인데, 1,200페이지로 엄청나게 두껍지만 모두 갱지를 사용해서 엄청나게 무겁진 않다. 사실 무척 얇은 종이의 책을 보면 손상이 염려될 정도인데 포포의 조완 씨도 그 얘기를 했다. 갱지라서 오래 두면 변색할 거라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가끔 꼭 사야만 하는 책이 있다. 오랜만에 <디렉터리>가 그런 책이었다. 집에 두고 천천히 볼 생각이다. 참고로 책에는, 아리 마르코플로스가 직접 서명한 갱지처럼 얇은 사진 프린트가 들어 있다.
<한국 패션의 지금, 2011> 강의는 지난주로 반을 넘어섰다. 이제 네 번 남았다. 문지문화원 사이에서는 일 년의 간격을 두고 한 강의이고, 들을 사람들과 빠져나간 사람들이 어느 정도 보인다. 4월 말과 5월 초, 2주 동안의 휴강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문에 수강을 취소한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어떤 안타까움이 있다. 열 번의 강의는 내가 머릿속에서 구상한, '2011년의 한국 패션'이라는 작은 지도였다. 그 지도를 천천히 펼쳐가면서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지도는 열 번째를 마치면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한 것과 내가 하고 싶은 말에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어느 지점이 타협점으로 좋을까 반성도 해본다. 다음에도 강의하게 되면 패션을 넘어선 주제를 다루고 싶다. 그래서 문지문화원 사이 프로그래머님의 여름 강의 요청에는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좀 더, 큰 그림을 위해서….
블로그를 보거나 잡지를 통해 나를 먼저 알고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종종 듣는 질문은, '그래서 석우 씨는 정확히 뭐 하는 사람이세요?' 그럴 때 어떻게 대답할까? 그냥 패션 관련해서 글 쓰는 사람이에요, 라고 하면 반은 끄덕이고 반은 어딘가 미덥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최근 했던 일들을 생각한다. 어떤 패션 브랜드의 여름 시즌 광고를 기획해서 촬영까지 마쳤고(물론 내가 찍지 않았다), 책에 들어갈 사진을 함께 결정하고 그 안에 들어갈 글을 썼다. 이런 것을 디렉터, 혹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모 브랜드의 스타일링도 한 번 했고, 그 사이
강의를 하고, 잡지와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인케이스 코리아 Incase Korea와 함께 스펙트럼 매거진을 만들고, '당신의 소년기, yourboyhood.com'의 사진을 찍고(그 사진 중 일부는 미국 엘르닷컴 ELLE.com(US)과 브이 매거진 V magazine에 보냈다) , 아직 준비 중이지만 몇 개의 새로이 '종이'로 선보일 프로젝트가 있다. 아, 친구들과 함께 '피프티 서울 FIFTY SEOUL' 벼룩시장도 연다. 오늘은 다음에 기부할 단체와 협의도 했다. 항상 바쁜 이미지이지만 그중에서도 3월과 4월은 고난의 시간이었다.
하루에 각기 다른 네 개의 미팅을 마치면, 일곱 시만 되어도 탈진해버리는 인생. 육체적인 체력의 문제도 아니었고 하기 싫은 일이라 받는 스트레스도 아니었다. 다만 내 시간, 내 생각, 내가 중심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난주까지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일 끝나면, 술 마시거나 못한 작업을 재개했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명함으로 쓰는 '당신의 소년기' 스티커에 패션 저널리스트 fashion journalist라고 적으면서 과연 내가 하는 작업이 그에 걸맞은 양질을 뽑는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었다. 오랜만에 간 홍대 주차장 길 바로 앞 2층 술집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사실 결론이라고 딱 떨어질 무언가가 있긴 있을 것이다. 조언도 듣는다. 부족한 것과 잘하고 있는 것, 개인적인 감정의 높낮이에 대한 것들. 좀 더 감사하라는 말을 들으면 종교적인 뉘앙스의 거부감도 스멀스멀 피어오르지만 사실 그게 맞다. 일 때문에 흥분되고 일 때문에 보람 느끼고 일 때문에 좌절하고 일 때문에 먹먹해질 때, 아, 정말 일이 인생의 전부인가, 싶으면서도 이렇게 치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니 이보다 더 치열해야 한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낄 때도 있는 것이다.
여행 가고 싶다. 두 발과 두 팔과 성한 머리와 교통비도 있으면서 왜 서울을 벗어나는 게 어렵지? 5월에는 꼭, 6월에는 꼭, 이런 허투루 하는 다짐 대신, 반드시 실행을.
내일, 르노삼성자동차의 한국과 프랑스 자동차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강연한다. 작은 워크숍으로 예상하는데, 스팸 메일함에 들어갔던 메일을 십여 일 만에 확인하고서 성사되었다. 한 시간 남짓 동안 무얼 얘기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종종 인터뷰 비스름한 것을 할 때, 이십 대의 신조는 두 가지라고 말했다. '다양성 diversity'과 '지역성 locality'. 그러다 하나 더 든 생각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뷰티풀 루저스 Beautiful Losers>에서 정말 맨땅에 헤딩한 예술가들이 그게 예술이라거나, 새로운 개척이라든지, 어떤 사명감을 느끼지 않고 시작해서 만든 문화라면서 말한 '두잇유어셀프 Do It Yourself·D.I.Y.'라는 단어.
아, 항상 수년 전부터 맨땅에 헤딩한다는 행위에 대해, 앞선 길을 가는 선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좀 외롭다고 느꼈고 그게 우울함으로 직결된 경우도 잦았다. 올해 들어 하나 바뀐 점이 있다. 이제는 나를 보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안다.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고 모자란 것들을 보충해야 하고 가끔 조언해주는 선배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고마움을 느낀다. 사진 찍고, 스타일링하고, 강의와 여타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주위 사람들과 꾸며보려는 것 안에는, D.I.Y.라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을 어디서 배웠고 어디로 가는 걸까 설명하라면 복잡해진다. 가르쳐준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원천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과도기일 뿐이지만, 서울에서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흥분되고, 재미있고, 또 치열해지려고 한다.
스스로 모자람을 느낀 사람은 그걸 대응하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특화 特化한 정답은 없다. 지금은 그런 시기이고, 조급해지겠지만 조급하지 않으려 하면서 나름의 해답을 찾고 싶다. 5월 24일 화요일, 일기예보 상으로 서울 28도, 폭염. 오후 내내 카페에 있을 것이고, 어제와 똑같이 입었다. 낮의 태양만 잘 피한다면 저녁에는 꽤 선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