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를 겪은 이기심과 이타심
7월 26일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가 정식 개봉하였다.
2015년 MBC 무한도전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보다 현실감 있는 영화로 재구성한 것이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스토리를 끌어가고 있으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그만큼 우리가 군함도에 대해 잘 모른다는 뜻은 아닐까?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해 영화와 같은 접근성이 낮은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역사의 뒷페이지에 감추어져 있던 챕터를 과감히 앞으로 끄집어내는 시도. 이것이 기록으로써의 영화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군함도는 우리 국민들에게 강요된 희생과 비인간적인 처우 등으로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일본의 산업화를 기록하기 위해 강제 징용에 대한 부분은 모두 제외된 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이 [우리가 군함도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대넓얕'팟캐스트 [예술] 편에서는 기록으로써의 영화를 다룬 적이 있다.
고대 벽화를 보면 당시 있었던 일들을 그림과 문자로 표현하였고, 훗날 예술의 시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태초의 예술은 대부분 기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예술의 형태를 빌려 기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역사영화가 그러하듯이 군함도도 영화적 재미를 떠나 기록으로써의 의의를 잊지 말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나를 포함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영화를 곧 군함도의 전부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실에 근거하여 표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 영화는 제작자의 관점과 의도에 따라 표현된 '군함도'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관객의 자발적인 2차 정보 습득과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군함도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과 관점을 갖길 바란다.
정확히 알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뤄낼 수 있고, 유리벽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우리 국민은 헌법과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아가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결과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영화는 BEP(손익분기점)이 1,000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대한 제작비를 투여한 블록버스터이며, 역사적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꽤 흥미진진한 전개와 스토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많은 관객이 들것이라고 쉽게 예상되기 때문에 영화의 스토리에 대한 기록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을 스쳐갔던 생각 (때로는 군함도를 벗어나는)에 대해 몇 가지 기록해보고자 한다.
스토리를 끌어가는 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인물(캐릭터) 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하나의 명확한 특성을 갖고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은 입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의 강한 특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과 목적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서로 다르게 활용(?)한 몇 가지 장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1. 웃음
극 중 이강옥(황정민)은 생존을 향한 욕구가 매우 강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의 웃음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가장 큰 무기로 역할을 해낸다.
(a) 나를 위한 웃음
일본군 앞에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확실히 인지하고 '웃음'을 앞세워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고자 한다. 이때의 웃음은 매우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는 웃음이며, 매우 간절함이 느껴지는 웃음이다. 웃음은 쉽게 전염된다고 하지만, 그의 웃는 모습은 전염되지 않고 오히려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b) 딸을 위한 웃음
이강옥은 하나뿐인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의 생존을 향한 처절함은 딸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아버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참혹한 환경 속에서 딸을 위로하기 위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환하게 웃어 보이는 그의 표정으로 딸은 안심하게 되고, 그 또한 안심하게 되는 장치로 웃음이 사용된다.
이 장면에서 계속해서 연상되는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로베르트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이 영화에서도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과장 행동과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웃음이 같은 효과로 사용되었다. 자녀를 둔 아빠의 입장에서 이 두 장면의 웃음은 눈물이 나는 웃음이다.
2. 음악
이강옥은 악단을 이끌며 음악 연주를 한다. 그리고, 군함도에서는 이 음악으로 인해 징용에 끌려온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a) 나를 위한 음악
음악으로 돈을 벌고, 음악으로 일본군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웃음과 함께 생존의 도구로 음악이 활용된다. 이 음악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냄과 동시에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강하게 어필하는 역할을 하며, 실제로 초반 군함도 생활에서 많은 편의를 얻어내는데 톡톡히 역할을 한다.
이 영화에서도 음악은 힘을 발휘한다. 극과 극의 위치에 서있는 조선인과 일본군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트리는 역할로써의 음악의 힘이 보인다. 하지만, 이 음악은 지극히 개인의 안위를 위해서 활용된 때문인지 숭고한 음악의 힘이나 감동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역시나 맥락이 중요한 것 같다
(b) 타인을 위한 음악
마찬가지로 이강옥 밴드의 연주를 보면서 떠오른 또 하나의 영화와 밴드는, 바로 윌리스 하틀리가 이끌었던 [타이타닉]에서의 밴드이다. 이 밴드도 자신들의 장기인 음악을 연주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이 연주의 목적이다. 타이타닉 호에서의 연주는 '타인' 즉 겁에 질린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탈출을 뒤로 미루고, 승객을 위한 연주를 하게 된다. 이것이 타이타닉 명장면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3. 힘
일본이 무력으로 조선을 침략하고,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했듯이 힘은 자신의 이로움을 위해 활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영화에서도 꽤 많은 힘이 표현되고 있다. 그중 최칠성(소지섭)의 힘을 주목해보자.
(a) 나를 위한 힘
조선 깡패 최칠성은 일본군에 강력한 힘을 대항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일본에 맞서는 정의로운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저 남들의 지배를 받기 싫어하며, 자신의 강한 힘으로 타인을 굴복시켜 결국 스스로의 안위를 꾀하는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군함도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힘'을 앞세운 자신만의 방법으로 적응을 하지만, 그 힘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강압과 폭력으로 변화되면서 약자는 계속해서 고통을 받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힘으로 조선을 무력화시킨 일본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b) 조선인을 위한 힘
군함도에서 일본군과 매국 조선인들에게 수없이 시달린 최칠성은 계속해서 자신의 힘을 활용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그 힘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조선인을 돕는 방향으로도 사용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오말년(이정현)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조선인이라는 동질감이 생긴 것일까? 안타깝게도 영화만으로는 그의 심경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오말년을 향해 열리는 마음을 느끼고 자신과 오말년을 지키기 위한 '힘'으로 보는 것이 더욱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이 시점에서야 비로소 소지섭이 '우리 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ㅎㅎ)
그리고, 재미있었던 것은 출연배우를 소개하는 영화 시작 부분의 크레디트이었다.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하나씩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소개된 인물
그리고, 이경영
다른 배우들은 이름만 나왔는데 출연 안 하는 영화가 더 적을 정도인 '이경영'님은,
"빠질 리가 없지!", "안 나올 줄 알았지?"라는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재미와 흥행을 떠나, '군함도'와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한 이슈가 지속적으로 회자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