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8 싸이월드 게시글에 대한 재매개
2007년경 사진을 찍어 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 내가 줄곧 피사체로 관심을 갖던 대상은 마네킹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파편화된 신체인 마네킹은 언제나 매력적인 피사체였다. 그런데 왜 나는 마네킹을 매력적인 대상으로 여겨던 것일까.
마네킹을 구성하는 플라스틱은 근대 이후의 산업화된 도시의 속성을 잘 설명하는 소재이다. 또한 마네킹이 나타내는 파편화된 신체란 라캉의 거울단계 수준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무의식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아마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강민근은 두 가지 서로 낯선 것들이 마네킹에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네킹을 예술적 대상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 마네킹에 대한 관심은 강민근이 남성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마네킹이 나타내는 신체는 여성의 것이 주를 이룬다. 남성 마네킹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마네킹으로 형상화된 신체의 대다수가 여성의 것이 많다는 뜻이다. 이는 도시를 떠다니는 욕망의 담론이라는 것이 이성애 남성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이 욕망의 생산자는 남성인데, 그 욕망의 담론 내에서 욕망의 주체는 여성으로 나타난다. 아무튼ㅎㅎ
지금의 강민근은 마네킹을 찍기보다 마네킹을 만들고 싶다. 절단된 중년 남성의 신체 마네킹을 잔뜩 만들어서 방안에 가득 전시하고 싶다. 그러면 이제 어떤 평론가가 ‘강민근이 자신의 남성성을 작품에 투영했다’거나 또는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와 같은 소리를 할 때, ‘으이그 증말 헛다리 제대로 짚으셨네여’라고 비아냥거려 줘야지. 물론 속으로만.
그리고 재매개 후기.
재매개는 지나간 시간을 다시 서술하기 때문에 단순한 반복처럼 보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기 때문에 당연히 새로운 것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복은 사전적 정의처럼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못한다. 그런데 과거의 재현이 과거와의 동일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은 어쩐지 묘지와도 같이 느껴진다. 현재 시점에서 재현된 과거를 바라보는 일이,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동일한 과거는 있을 수 없다고 쓰인 비문을 읽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이언 메이든의 반복되는 리프를 들으며 다시 생각해 본다. 두 번째 프레이즈는 첫 번째 프레이즈를 추모하는 무덤이다. 전 애인을 닮은 지금의 애인은 만나지 못하는 인연의 묘비이다. 그리고 내가 지닌 반복되는 취향과 습관이란 내가 보낸 시간의 지층이 만든 묘지이자 무덤이자 묘비이지 화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