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란 뭘까?

[10. 09 - 10. 15]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2)

by 킬라

* 스틸컷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http://www.biff.kr/kor/)에서 가져왔습니다.

* 나열한 순서는 제가 관람한 순이며,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집 이야기 I Am Home

2019 | 박제범 | 드라마 | 93분


이유영에게 또 속았다. 재미없고 길다. 길다고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 영화에 줄 별점을 반 점씩 깎았다. 이렇게 별점 중심적으로 영화를 보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런 영화에 남들이 시간 낭비하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시간 낭비하기 싫은 사람은 긴 글을 읽지 않을 테니까) 별점 평가도 꽤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은서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현재로서 소환된다. 그러나 부모란 언젠가 필연적으로 과거가 된다. 어머니의 집에 갈 때도 종이 가방을 들고 가던 은서가 아버지의 집에 머무르며 쌓아 뒀던 박스의 테이프를 뜯는 것은 명백한 향수의 태도다. 이 태도 때문에 영화는 인물과의 거리 두기에 실패하고, 은서와 함께 그리움에 매몰된다. 제주도 바다에서의 장면으로 충분히 암시되는 아버지의 죽음이 스크린 위로 구현되는 것이다. 애정을 가지고 묘사한 대상의 죽음을 영화의 결말로 가져오는 것은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것으로 끝이라는 게 문제일 뿐. 눈물이 마르면 <집 이야기>에 대한 생각도 함께 말라 버린다.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면? 나처럼 별점을 깎는다.



완벽한 후보자 The Perfect Candidate

2019 | 하이파 알 만수르 | 드라마 | 101분


변화는 점진적이다. 진료소 앞의 도로포장처럼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변화도 물론 있지만, 그것도 마리암이 니캅을 벗고 “왜 나를 존중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낸 결과 아닌가. 영화 내내 마리암이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별로 보여 주지 않아도 됨에도) 보여 주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이래서 컨텍스트는 중요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운전이 허용된 지는 이제 1년 되었다. 나는 (그리고 영화는) 마리암의 당선을 기다린다.



커밍 홈 어게인 Coming Home Again

2019 | 웨인 왕 | 드라마 | 86분


<집 이야기>와 하고 있는 이야기는 거의 같은데 이쪽이 훨씬 낫다. 두 영화를 비교하는 것으로 수업 대체 과제를 냈기 때문에 그 글을 쓸 때 생각해 봤는데, 이쪽은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도 그것을 과거에 남겨 두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인 듯하다.


‘뼈에 붙은 살’이라는 마지막 시퀀스의 부제가 기억에 남는다. 갈비를 칭하는 것이겠지만 이것을 굳이 부제로 썼을 때는 다른 의미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의 신체. 흔히 ‘산송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뼈와 살만 남은 인간을 칭하는 말이다. 가족을 잃으면 얼마간은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당연하겠지. 혹은 뼈와 살처럼 분리해 낼 수 없는, 분리하기 어려운 창래와 어머니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창래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슬픔에 잠식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중지 The Halt

2019 | 라브 디아즈 | SF, 범죄 | 276분


인터미션이 없다고 해서 졸 것을 걱정했는데 역시나. 피곤해서 서너 번쯤 잠들었다. 너무 자서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다만 보면서 홍콩 생각이 많이 났다.



윤희에게 Moonlit Winter

2019 | 임대형 | 멜로/로맨스 | 105분


<만월>로 크랭크인 소식을 알렸다가 이름이 바뀐 그 작품이다. 소혜는 귀엽고 김희애와 나카무라 유코의 연기는 섬세하다. 하지만 그냥 그렇다. “이 영화는 퀴어 영화이기에 앞서”라는 말로 시작하는 평을 붙이기 좋은 영화다. 그게 영화의 잘못은 아니지만. (하지만 정말 아닐까?) 그래도 2019 부산 최고의 명대사를 낳은 영화임은 인정한다.


보이스오버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은 영화가 시청각 매체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소리에만 너무 많은 정보값을 담으면 화면이 힘을 잃는다. 그렇다면 그 순간에 한하여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오디오 트랙이 될 뿐이다. 이 영화는 그 점을 간과했다. 김희애의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지만, 후반부 화면은 기억에 남은 것이 거의 없다.


나카무라 유코의 연기를 조금 더 보고 싶다. 정확히는, (숨기고 살라는 말은 하지 않는 버전의) 료코와 쥰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 일본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일본 퀴어 영화 또한 본 적이 없는데, 그 영화들이 궁금하다.




그래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 총평하자면,


친구들은 본 영화가 별로였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작품을 많이 보았다. 특히 10월 6일에 본 <소녀 안티고네>, <진실과 거짓 사이>가 생각 이상으로 엄청 좋았다. 다만 영화제 운영은 별로였다. 10월 5일에 부산에 도착해 시네필 발권은 다 튕기고, 미리 예매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첫 영화로 보았는데 영사 사고가 났다. 대사 4~6개마다 화면에 노이즈가 끼며 영자막이 겹치는 사고였는데 상영 중단이나 재상영 없이 상영이 강행되었다. 나는 한글 자막을 읽을 수 있으니 내용 이해에는 문제가 없었다지만 불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수 없는 관객은 어땠을까? 상영이 끝난 후 관계자가 나와 사과문을 낭독하긴 했지만 환불 조치나 추가 상영 같은 보상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지구의 끝까지>와 <비바리움>은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안 맞아 보지 못했다. <시빌>과 그 외 많은 한국 영화들은 국내 개봉 예정이거나 개봉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지 않았다. <증인>, <프린세스 아야>, <와스프 네트워크>는 발권했지만 늦게 일어나거나 시간을 맞추지 못해(영화관 사이 이동 문제) 보지 못했다. <니나 우>는 예매했지만 직전에 <중지>를 본 후 너무 피곤해서 취소했다. 이중 <지구의 끝까지>는 전체적으로 평이 안 좋지만 그래도 내가 보고 싶었는데 못 봐 아쉽다. 내가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보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남의 판단을 나의 판단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에듀케이션>, <야구소녀>는 서울독립영화제 경쟁작으로 상영 예정이니 시간이 맞으면 볼 것이다. <남매의 여름밤>도 새로운 선택으로 초청되었으니 역시 시간이 맞으면 볼 것이다. 폐막식에서 BNK부산은행상을 수상해 알게 된 <페뷸러스>는 내가 미처 프로그램 노트도 읽지 못했던 작품인데 내년에 개봉한다고 하니 보고 싶다.


폐막식 전날 부산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여러 의문이 들었다. 좋은 영화란 뭘까? 10월 9일에는 저녁에 <집 이야기> 한 편만 보고 낮에는 <남/동남아시아 영화의 미학적 동력으로서 젠더/섹슈얼리티> 포럼에 갔었는데, (좀 상관없는 인용이지만) 발표한 교수 중 누군가가 질의응답 중 “영화는 대단히 자본주의적 산업”이라고 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정말 좋은 영화란 뭘까? 주류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 저항하는 영화만이 좋은 영화라면, 그런 영화들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영화는 영화조차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어떤 영화들은 단지 ‘상업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되고 있지 않은가? 평론의 역할에는 주류 이데올로기에 복속한 (듯이 보이는) 영화들로부터 전복적 메시지를 읽어 내는 일도 포함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어쩌면 내가 영화라는 산업과 거리 두기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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