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02 - 10. 08]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1)
* 스틸컷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http://www.biff.kr/kor/)에서 가져왔습니다.
* 나열한 순서는 제가 관람한 순이며,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Lady on Fire
쓸데없지만 나는 가끔 영화 제목들에 대해 고민한다. 타오르는/여인의 초상일까, 타오르는 여인의/초상일까? 전자라면 마리안느가 태워 버린 엘로이즈의 미완성 초상이 떠오르고, 후자라면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불붙은 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의 초상이 떠오른다. 부산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본 영화인데 영사 사고가 나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영화를 봤지만 제대로 본 것 같지 않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바다를 보는데, 카메라는 마리안느의 왼편에 위치하고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오른편에 있기 때문에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보지 않는 동안은 우리도 엘로이즈가 마리안느를 보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또한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의 행동과 표정을 짚는 장면에서, 영화는 엘로이즈가 캔버스 건너편의 마리안느를 곁으로 부르게 하여, 비슷한 장면에서 다른 영화들이 취하는 숏-리버스 숏 대신 투샷을 사용함으로써 시시각각 변하는 마리안느의 표정을 엘로이즈가 마리안느를 바라보는 눈빛과 함께 우리에게 보여 준다. 사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촬영이 아주 좋았다.
영화에는 음악이 딱 두 번 사용된다. 이렇게 적막 속에서 꼭 필요한 소리만을 들려주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엔딩에서 깨지긴 했지만 <폭풍의 언덕>(2011)도 그래서 좋았고.
진실과 거짓 사이
Port Authority
내가 아는 한 “모든 사람은 퀴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장 잘 표현한 영화. 한글 제목이 <진실과 거짓 사이>가 되는 바람에 사람들은 진솔한 다가가기에 치중해 영화를 보지만, 사실 진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폴은 이복 누나를 만날 작정으로 피츠버그에서 뉴욕까지 왔지만 누나는 그를 거부한다. 갈 곳이 없어 방황하다 리를 만나고, 리가 운영하는 쉼터에 들어간다. 리와 쉼터의 친구들은 이민자 혹은 불법 거주자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것을 업으로 한다. 여기 적응하지 못하는 폴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폴이 “백인 되기”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심지어 그의 피부색이 속하는 곳에조차 폴은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 다들 폴이 비퀴어라고 생각할까? 와이와 헤어지고 술을 진탕 마신 폴은 리의 침대에서 잠들고, 춤추는 티케이의 꿈을 꾼다. 이쯤 되면 영화가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전달력이 반감될 정도인데 폴이 비퀴어 백인 남성이라 불쾌하다니. 이런 게 퀴어와 비퀴어의 간극인 걸까? (물론 그렇다고 폴이 게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말해 주지 않는 것이 내가 이 영화를 첫 줄과 같이 평가한 이유니까)
소녀 안티고네
Antigone
디아스포라에게 가족이란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울타리다.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들을 울타리 바깥의 것과 유리시킨다. 나는 모티브가 된 신화도 희곡도 잘 모른다. 그래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되는대로 적어 두었다. 여성 청소년 구치소에서의 모든 씬은 너무나 페미니즘적으로 독해 가능한 것들인데 어째서 이 영화는 벌써부터 반-페미니즘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을까? 바이링구얼의 삶은 언제나 경계에 설 수밖에 없는 걸까? 한글로 번역하며 굳이 제목에 ‘소녀’는 왜 붙인 걸까? 같은 것들.
나이마 리치는 대배우가 될 것이다. 다음 영화 시간이 촉박해서 GV에 끝까지 남지 못한 게 아쉽다.
비탈리나 바렐라
Vitalina Varela
제출해야 할 글이 있어서 영화를 40분 남기고 나왔다. 그런데 그 40분 동안 글을 쓴 것이 아니어서 그렇게 나온 게 후회된다. 다행히 곧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한다고 하니 그때 다시 볼 것 같다.
코스타가 담아 낸 어둠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아름다움만을 느끼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애도의 과정으로 해석하는 것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비탈리나 바렐라>의 어둠은 그보다는, 일상적 소외의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끌어내는 종류다.
나의 정체성
My Identity
레이와 아오이가 도망치는 성천궁과 그 주변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으로 보인다. 사람이 살지 않는 여관, 고요하고 레이와 아오이만이 지나다니는 길들, 누구도 오지 않지만 유일하게 레이와 아오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대만 연구자가 자원봉사를 하는 성천궁. 이 기묘한 씬들이 모여 환상적인 느낌을 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붉은 원피스를 입고 이곳에 돌아오는 레이를 보면, (그 붉은 원피스가 몇 번 등장하는 어린 시절 대만에서의 기억 속에서 입고 있던 것임을 생각했을 때) 이곳이 일본 속의 타이완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배우들이 기억에 남는 편인데 감독님은 주로 배우를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을 중심으로 캐스팅을 한다고 한다. 레이 같은 사람, 아오이 같은 사람. 영화는 좋았지만 “그래서 자수하나요?” 같은 하등 쓸모없는 질문을 하는 남자들 때문에 역시나 GV는 망했다.
다크-다크 맨
A Dark-Dark Man
보다 보니 졸려서 영화 초반에 거의 잤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서 본 중후반부만으로도 이야기가 너무나 장황했다. 나는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끝내야 할 때 끝내기라고 생각한다. ‘이건 넣고 싶은데’ 하는 욕심이 영화를 망친다. 감독판에 큰 흥미가 없는 이유다. 카메라 워크는 좋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왼쪽에 앉은 사람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는데 휴대폰을 떨어뜨렸는지 한참 동안 찾지 못해서 거의 2분 동안 벨소리가 울렸다. 그 다음에는 오른쪽 사이드 쪽에서 벨소리가 3번에 걸쳐 울렸다. 같은 벨소리였다. 그렇게 울리는 동안 휴대폰을 꺼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나? 이 XX XX들은 영화를 왜 보러 오는지 의문이다. 그냥 나가서 뒈질 때까지 휴대폰에 모가지 처박고 살아도 되는데.
봄베이의 장미
Bombay Rose
평범하다. 노래가 한두 곡쯤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계속 같은 노래만 반복되니 지루한 감이 있다.
남의 떡
Greener Grass
매디슨 페이지. 캐릭터마다 메인 컬러를 부여한 점이 좋았다. 그 덕분에 영화 말미, 리사가 질의 옷을 입은 모습을 통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선명히 드러나기도 하고. 가끔 이렇게 문자 그대로 정신 나간 영화가 좋다. 한 번 더 보게 개봉하면 좋겠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 올해 부산에서 미드나잇 패션 2를 꼭 봤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는다. <비바리움>! <블러드 퀀텀>!
아만다의 선택
The Good Intentions
홈 무비스러운 영화다. 실제로도 감독이 가지고 있던 홈 무비를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완성도도 내용도 그 정도에 그친다. 아만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그의 선택이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 이제 스마트폰으로 영화도 찍는 시대에, 언제까지 VHS 화면이 영화 속의 영상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VHS가 사라지면 그 다음은 뭐가 대체하게 될까? 노이즈 낀 360p 화면들?
어느 영화감독의 고군분투기
The Gangs, The Oscars, and The Walking Dead
장르영화 제작의 경제적 곤궁으로부터 출발한 영화일까? 감독 때문에 고생하는 프로듀서의 복수 같은 영화일지도 모르고. 끊임없이 생각을 바꾸게 하는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영화 속 영화가 들은 평처럼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냐”고 하는 사람도 많고. 마지막에 두 친구가 새로 찍을 영화의 제목이 <어느 영화감독의 고군분투기>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자기반영적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웃음코드만 (유해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어떻게 잘 수정하면 좋은 코미디 감독이 될 것 같다. 오프닝 시퀀스는 반쯤 스릴러 느낌이 나는데 느와르 영화에 대한 꿈도 계속 지켜 나가길!
패밀리 로맨스
Family Romance, LLC.
어쩐지 <홀리 모터스> 생각이 난다. 그쪽을 더 좋아하지만 마음은 이쪽에 좀 더 남는다. 마히로 때문일까? 카메라의 흔들림은 의도적인 다큐멘터리 연출이었을 것이다. 이미지조차 픽션과 현실의 경계에 두고자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