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부쩍 '나는 이제 바보가 된 건가?' 라고 자문하는 일이 잦다. 기억은 너무 빠르게 휘발되고,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만한 지식도 희미해졌다. 창의적으로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야 할 때에도 예전보다 속도가 느리고, 비쩍 말라붙은 땅에 난 잡초처럼 볼품없는 생각 뿐이다. 더 나아지겠다, 발전하겠다는 의욕도 사라졌다.
어린 시절, 적어도 30대 중후반. 둘째를 낳기 전까지도 이유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맘 먹으면 못할 게 뭐가 있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맘 먹어도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고, 일단 맘 조차 먹고 싶지 않은 순간이 많아졌다. 흐물해진 얼굴과 늘어난 뱃살이 한심해서 며칠 식단을 하고 운동을 해도 효과가 미미하다. 예전에는 한두 번, 짧은 기간 해서 효과를 봤던 것이 더이상 통하지 않고. 루틴을 쉼없이 지켜야만 이뤄질 수 있는데. 그런 꾸준함을 지키는데 서툰 까닭이다.
내가 바보가 되버린 이유는 뭘까.
단지 나이 때문일까? 9층 계단오르기를 결심하고 오르다가 숨을 헉헉대며 4층에서 엘베로 옮겨타며 생각했다. 마흔 이후에는 무엇이든 쌓아올리기가 어려워 지는 거구나. 공부도 때가 있고, 운동도 때가 있는 거구나. 뭔가를 시작하는 게 전보다 배는 힘들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실천할 때 습득력이 떨어진다. 챗GPT나 미드저니 같은 AI 기술이 핫하길래 조금 들여다보고 써봤지만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흥미가 떨어졌다.
세 번째 회사인 이 곳의 문화가 나와 잘 맞지 않아서, 퇴보가 더 가속화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솔직히 나는 누군가가 끌어주는 것에 익숙했다. 방향을 잡아주고, 성과를 관리해주는 상사가 앙칼지고 무서울수록 결과도 훌륭해졌다. 지금은 실무도 하면서 그런 상사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데, 잘 못하겠다. 나는 스스로 업무성과를 포장하면서 자신을 발전시켜나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곳에서 깨달았다. 상사가 내가 뭘 만드는지 딱히 관심이 없으니 줄곧 정체되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그게 편하니까. 나쁘지 않다고 타협하면서 맥아리 없이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간혹 윗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해야할 때는 반짝 불꽃이 타오르지만, 오래 가진 못한다.
이래도 상관 없는 거 아닌가?
의욕이 사라진 중요한 원인은 거기에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서 살았다.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것들은 왠만큼 건드려봤다. 극한까지 힘들었던 회사들에서 두번의 이직 끝에 집에서 가깝고, 안정적이며 워라밸 좋은 회사에 입사해서 편하게 잘 다니고 있고. 아이도 생각했던대로 아들딸 둘을 다 낳아서 키우고 있다. 휴직 기간에 해외 1년 살기도 해보고 왔고, 내 명의의 집과 수익형 부동산도 조금이나마 있다. 잠깐이나마 인스타툰 연재도 했고, 글도 많이 써봤다. 홈트하면서 다이어트해서 입고싶은 옷도 입었다. 물욕이 많지 않다보니 통장 잔고도 그닥 줄지 않아서 괜찮다. 아이들 교육과 육아는 고되지만 애들에게 많이 바라지 않아서 괜찮다.
안정적이고 나쁘지 않은 삶이다. 굳이 더이상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거나 무리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 아닌가? 라는 마음이 어느새 자리잡고 있다. 쳇바퀴처럼 일상을 돌리면서, 의미있는 루틴을 만들고 그걸 지키면서 행복을 느끼는 정도의 삶이어도 상관없는 거 아닐까 싶어졌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나 범주에서 벗어나는,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어제와 오늘은 비슷해지고, 삶이 차분해졌다.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그런데도 불안한 이유는 무엇인지.
주말동안 남편과 노후 계획에 대해 얘기했다. 남편은 지금이 우리가 한번 더 점프해야 할 시점이라고 힘줘서 말했다. 이렇게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지금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용기있게 투자해 볼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남편은 불안해 했다. 세계 속에서 한국이 단군 이래 지금 최고의 위상에 올라섰지만 이제는 내리막길 뿐일지 모른다, 지금 자산을 움직여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 말이 맞을지, 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말에 따라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해도 불안함이 해소될까. 적어도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자기 위안은 얻을 수 있겠지만, 변화로 인해 그 전보다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20대, 30대에는 거뜬히 이겨냈던 충격도 40대, 50대에는 더 거세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이제 변화와 충격을 받는 게 싫어져 버렸는데. 그럼에도 남편의 불안에 기대어 인생의 도전을 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지 고민하는. 바보같은 내가 있다.
두서없지만 적어보기로 한다. 마흔 이후의 삶에 대하여.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하여. 안정감과 불안감, 일상과 일탈에 대해서. 그리고 실천에 옮길지 여부는 아직 모르는 - 40대의 도전들에 대해서 기록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