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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생 Jan 26. 2021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말을 가로 막아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말문이 막히고, 선을 긋고 싶은 순간들이 더러 있다. 사람들에게 나를 어디까지 보여주어야 할까?라고 친구에게 물으니 보여 주고 싶은 만큼이라는 답을 받았다. 보여 주고 싶은 만큼. 그런데 사람들이 그보다 덜 보거나, 더 보면 어떡하지? 내가 보여 준 것은 보지 않고, 보여주지 않은 것만 보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불안하다. 그럴 때면 무서웠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몰라서 상처 입었고, 상처 주었던,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아주 보통의 질문들이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맞는' 답을 내놓을 수 없었던 질문들, '틀렸다'라고 손가락질받을 것이 뻔해 보였던 질문들. 그래서 나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만약 내가 그때 입을 열었다면, 나는 틀리지 않다고, 애초에 이 질문은 정답이 없는 것이라고 한 마디만 했더라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건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숨 막히는 기억들 속에서 아주 작은 숨구멍은 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케케묵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까닭일 것이다. 아무도 듣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조금은 숨이 트일 것 같아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지난날의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부지런히 숨었고, 감추었고, 피했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고여서 썩은 물이 마음에 방류되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용서할 수 없었나, 그리고 여전히 나는 무엇을 용서할 수 없는걸까, 이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전히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그걸 하나씩 따지다 보면, 결국 신의 이름을 더럽히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여전히 그렇다. 증오와 경멸의 감정으로만 남아 얽혀 있는 많은 잘못들을 풀 자신이 없다. 하지만 확실하게 아는 몇 가지는 모든 물음에 명확한 정답은 없었고, 그렇기에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뿐이란 걸 안다. 머리로는, 생각으로는, 나를 더럽히는 구정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머리가 아는 것들을 가슴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정답이 없다는 걸 아는데,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나를 구정물 속에 빠뜨린다. 시도 때도 없이, 나도 모르는 새에 증오가 튀어나오고, 과거의 일들이 눈 앞에 그려져 우울하고 초조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상태에 빠진다. 보여주고 싶은 만큼, 그 정도를 나는 모른다. 솔직히 나를 조금도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가슴이 하는 일은 종잡을 수가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자주 감정으로 무너질 것이고, 또 생각으로 일어설 것이다.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여전히 과거에 발이 묶여 있고, 누군가를 증오하고, 현재를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쓰지 않고 버티려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아무 글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증오를 쏟아내지 않으면,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면, 마음에 행복이 들어올 자리가 없을 것 같았다. 언젠가 머리가 아는 것을 가슴도 아는 날이 올 때, 그 안에 증오와 경멸이 아닌 사랑이 담길 때, 배설물 같은 이 글이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그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때가 되면, 쓰고 싶은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써야만 하는 글 말고 쓰고 싶은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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