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하는 마음으로 J에게

나보다 낮은 곳에 누군가를 두고 스스로를 높이기 바빴던 부끄러운 나날

by 유영

'하고싶은데 하지 못한 말'에 실린 글은 편협하고, 일방적이고 , 편향적이고, 비논리적이고,비도덕적이고, 때론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으로 자기검열을 하고 대화 하고 있는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느라 극단적인 의견대립을 피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내 생각을 최대한 자유롭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J야 안녕? 내가 염치도 없이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네.

생각해보니 나는 너한테 그리고 너의 어머니께 받기만 했지. 내가 준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나는 너에게 준 게 없는데 너도 너의 어머니도 항상 그렇게 고마워하셨지.

여러 면에서 나는 너에게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때 나 그런 생각을 했었나 봐.

우리가 처음 만났던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지. 10살이었어. 나는 부모님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란 탓에 또래보다 의젓하고, 눈치도 빠르고, 기가 셌지. 부모님의 부족한 사랑을 남은 가족들이 채워줬기 때문에 언제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 무서운 게 없었고, 나 잘난 맛에 사는 그런 어린 애였어.

너는 학교에서 매일 놀림을 받던 아이였지. 짓궂은 남자애들은 매일 같이 너를 놀려댔지. 너는 말이 조금 느리고, 다른 애들보다 생각도 조금 느렸지. 남자애들은 매 쉬는 시간마다 너에게 찾아가 더럽다고 놀리고, 바보라고 놀렸지. 여자애들은 그런 남자애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만 했지. 누구도 나서서 말리는 사람은 없었어. 그냥 방치했을 뿐이었지. 근데 나는 말렸지. 남자애들을 꾸짖었지. 선생님께 너와 짝이 되겠다고 자진해서 나섰지.


사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나대는 성격이라 그랬는지. 부반장이라 책임감을 느꼈는지, 어쩌면 정의구현 해야 한다는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에 빠져있었는지도 몰라. 그렇게 우린 짝꿍이 되었지.

1년 내내 나는 너와 짝꿍을 했지. 같은 반 아이들은 짝사랑하는 누가와 짝이 되고 싶어 자리 바꾸기를 할 때마다 다들 설레했는데, 난 짝사랑하던 애가 다른 반이어서 너랑 짝꿍 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어. 너와 짝꿍을 하면서 너에게 공부도 가르쳐주고 집에도 같이 갔지. 같은 반이다 보니 같은 시간에 끝나고 집 방향까지 같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너에게 공부를 가르쳐준다 하니까 담임선생님은 <부진아(저능아) 학습지도>라고 쓰인 책을 주셨어. 나는 그 용어를 보고 조금 놀랐어. 애들이 이 책을 보면 안 될 것 같아 가방 속에 꼭꼭 숨겨두고 너희 집에 가서만 그 책을 펼쳐 공부를 가르쳐주었지. 그런데 애들은 그 책을 보지 않았는데도 너를 저능아라고 불렀지. 지금 생각하면 겨우 열 살밖에 안된 애들이 어쩜 그리 폭력적이었을까 생각해. 그렇지만 그 땐 서로가 서로를 놀리다가 다시 어울려 놀기도 하고, 반에 한 명씩 모두의 놀림거리가 있던 그런 때였지. 폭력이라는 것도 꼭 신체접촉으로 인한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란 것을 커서는 알게 되었지만, 그때 나는 우리는 잘 몰랐지.


그 이후에도 우리는 3년이라는 시간 내내 같은 반,짝꿍을 해야 했지. 내가 쉬는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우면 애들은 영락없이 너를 괴롭혔어. 6학년 때는 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짝꿍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조금씩 내 자유를 찾아다녔어. 좋아하는 남자애와 짝꿍을 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여자친구들을 사귀어서 학교가 끝나면 친구네 집에 놀러 다니기도 했지. 3년 내내 너의 관리를 해야 했기에 나도 많이 지쳤고, 피곤했어. 그래서 수업 중에 짓궂은 남자애들이 너에게 지우개를 던지며 괴롭히고, 쉬는 시간에 너의 물건을 던지면서 놀 때 교실을 떠나 가끔은 모르는 척 했고, 너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때야 교실 안으로 들어가 너를 챙기고 애들을 쏘아보곤 했지. 애들 앞에서는 내가 정의로운 애였을지 몰라도 실은 나 비겁한 애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교실 안에서 문제를 중재하는 역할은 선생님이 해주어야 하는 건데, 어린 나는 그게 다 너의 탓이라고 생각했어. 너와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을 거라고, 너와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면 남자애들과도 재밌게 놀았을 거라고, 모든 게 너 때문에 다 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너의 어머니께 거짓말을 했어.

중학교에 진학 할 때, 학교 지망 순위를 쓸 때쯤이었어. 학교에 가다가 너희 어머니를 마주쳤거든. 어머니께서는 요즘 왜 집에 놀러 안 오냐고 물어보시면서 "소예는 중학교 1지망 어디 썼어?" 라고 물어보셨어.

나는 순간 중학교까지 너와 짝꿍을 할까 봐 두려웠어. 그래서 내가 쓰지 않은 학교를 말했어. 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거든. 미안해. 그렇게 우린 다른 학교에 진학했지.


그리고 우린 각자의 삶을 살았고, 10년이 지나 우연히 길에서 너와 너의 어머니를 만났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어. 내 마음을 다 들킨 것 같아 창피했어. 너는 나를 반가워하며 핸드폰 번호를 물었고, 우리는 번호를 교환했지.

너는 자주 나에게 문자를 보냈고, 나는 반은 씹고, 반은 답했지.

그러다 무슨 마음에서인지 너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마도 나의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였을 거야. 나의 모든 행동은 백 퍼센트의 선의가 아니었어. 네가 내 속마음을 알았다면 크게 실망했겠지.


10년 만에 만난 너는 여전히 겉모습은 나와 같은 스물네 살의 성인의 모습이었어.

근데 5분도 안 돼서 알겠더라. 너의 말투, 너의기억, 너의 삶은 여전히 13살의 아이라는 것.

나는 네가 혹시 중, 고등학교 때 많은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닐지 걱정했어. 중고등학생은 초등학교 때와는 다른 수준일 테니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자살을하거나 성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나는 네가 떠올랐어. 그리고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기도 했어.


나는 둘러 말한답시고 "그동안 잘 지냈어. 혹시 뭐 일은 없었어? 음... 아픈 곳은 없었어?"라고 물었어.

그랬더니 너는 "나 수술해서 너무 아팠어"라고 말하더라.

나는 가슴이 철렁해서 "왜? 무슨 일 있었어? 누가 그랬어?"라고 되물었는데,

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안경을 벗더니

"나 쌍꺼풀 수술했거든. 눈이 너무 작아서 안 예뻤잖아.너는 수술 안 한 눈이지?"

나는 웃음이 터졌어. 이십 대 여자들이 보통 하는 아주 흔하디흔한 성형수술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거지. 순간 죄책감보다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와 수다 떨다가 집에 돌아왔지.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오만함이 느껴지더라.

나는 너를 만나준다고 생각했고, 네가 겪은 수술이라는 건 다 무거운, 심각한 일이라고만 생각한 거야. 평범하게 살아왔을 네 인생을 내 멋대로 나보다 낮은 삶이라고 치부하고 동정한 거지. 또 한 번 나의 오만함과 이기심에 얼굴이 화끈거렸어. 정말 진심으로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J야. 나는 너를 나보다 더 낮은 존재로 만들어 '너 보다 나는 낫다고' , '불쌍한 아이를 내가 도왔으니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스스로를 높이고 있었어. 10살일 때도, 10년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이 글은 그 때의 내 오만함을 경계하기 위해 쓰는 나 자신을 위한 편지가 돼버렸어.

또다시 너에게 전하는 진심이 아니게 돼버렸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진심이 너에게 닿길 바라.


미안해. J야.


오만하고 이기적인 소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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