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언제부터 대접받아 마땅한 존재가 되었는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말'에 실린 글은 편협하고, 일방적이고 , 편향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때론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으로 자기검열을 하고 대화하고 있는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느라 극단적인 의견 대립을 피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내 생각을 최대한 자유롭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 본 글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근무 시 겪었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먼저 불편하게 해 죄송합니다. 고객님께서 돌발상황으로 인해 많이 속상하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돌발상황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고객님의 원피스 세탁비와 재 구매비를 지급해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고객님의 자녀분께서 참여한 수업은 아동 체육수업으로 18~24개월의 아동들이 듣는 수업입니다. 대체로 이 시기의 아이들은 신체발달이 활발한 시기여서 다른 수업과 다르게 뛰노는 활동적인 수업 위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진행된 수업은 그 수업의 커리큘럼 상 가장 정적인 수업이었습니다. 수업의 준비물은 색연필이었습니다. 그런데 고객님께서는 매직과 볼펜을 준비물로 가져오셨습니다. 물론 색연필이나 매직이나 둘 다 필기구 인것은 맞지만, 정확하게는 고객님이 기억하시는 부분과 강사님이 전달하신 내용이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수업에서 고객님의 자녀가 고객님의 원피스에 낙서한 것을 저희 문화센터 쪽에서 책임질 수가 없습니다. 같은 수업을 듣는 다른 고객님의 아동이 그런 것도 아니고, 고객님의 자녀가 고객님의 옷에 수업 활동 중 낙서를 했다고 해서 저희가 그 옷의 세탁비와 재구매비를 지급할 이유는 없습니다.
고객님은 수업준비물을 잘 못 전달했다고 하셨지만, 대부분의 다른 고객님들께서는 제대로 챙겨오셨습니다.
그리고 강사님께서는 분명 아주 넓은 전지를 바닥과 벽에 붙여놓으셨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고객님의 자녀분은 고객님의 원피스에 낙서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희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고객님의 옷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드라이클리닝으로 낙서가 지워지지 않는 옷이 있나요? 그 낙서가 지워지지 않으면 원피스를 다시 구매해놓으라 하시니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황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옷이었다면 아이들이 보통 막 밀가루 묻히고 노는 이런 수업에 입고 오지 않는 게 최선 아닌가요? 물론 옷을 버릴 만한 수업이 있는 날은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저희도 전날 미리 안내 문자를 드립니다. 예를 들면 '밀가루 수업이 있으니 세탁 가능한 활동복 착용 부탁드립니다'라고요. 고객님도 이 수업을 오래 들으셨다니 아실 텐데요. 저희도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님의 편의와 서비스를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통제하기란 어렵습니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수업에서 매직으로 옷에 낙서하는 일을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고객님께서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않고 뭐했냐고 물으시고, 색연필로 가져오라는 소리 못 들었다고 하시고, 저희 매니저님과 서비스팀장님까지 오셔서 사과를 드렸지만, 고객님께서는 옷을 물어내라고 막무가내 셨습니다.
고객님 저는 개인적으로 고객님의 이러한 행동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상식적으로 대응하고 싶습니다. 회사에서 교육받은 대로 컴플레인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있고 그대로 대응하고 있지만, 그건 제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는 사실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객님들의 상식과 제 상식은 아마도 많이 다른가 봅니다. 어떤 고객님은 홍삼 10뿌리를 구매하시고, 7뿌리 드시고 온 후에 힘이 안 난다고 환불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죠. 이런 황당한 요구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저는 고객님들의 이러한 막무가내 요구에 모두 '네~네' 하며 응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이 있이 있습니다. 고객님은 돈을 쓰러 오셨고, 고객님이 소비하시는 돈으로 인해 저희가 월급 받고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저희도 월급에 맞는 노동(서비스)을 제공합니다. 저의 노동은 고객님에게 사과를 드리는 일만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의 고객님이 찾는 강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업무를 주 노동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판매하는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동반되어야 하는 지식습득, 물건의 진열, 매장의 청결관리 등 고객 응대 외에도 많은 것들이 저희가 받는 월급의 가치이며 노동에 포함된 것입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고객 응대를 하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객의 하인이 아닙니다.
가끔 정말 무례하게 구시는 고객분도 있습니다. 반말도 욕설도 듣기 힘들지만, 저희를 비하하거나 가정교육을 들먹거리는 등의 도를 지나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정말 그럴 때는 되묻고 싶습니다. 고객님은 어떤 가정에서 자라서 이렇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의 부모님을 욕하는지. 고객님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들을 내뱉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제가 업무상 교육받은 대로 대응하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로봇처럼 죄송합니다만 되풀이할 뿐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고객님이 한 욕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못 배워서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니 많이 배우시고 교양있는 고객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언제부터 고객, 손님이라는 존재가 대접받아 마땅한 존재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접받아야 하는 존재는 대접해서는 안 되는 존재인가요? 저도 같은 사람인지라 저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인격적으로 친절을 베풀고 싶습니다. 저도 일터를 나가서 집에 가면 누군가의 딸이 되고, 다른 상점을 가면 손님이 됩니다. 저는 일터에서만 직원일 뿐 다른 곳에서는 다른 역할로 변하게 됩니다. 또한, 이 일터에서 평생 근무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례한 고객님들과 제가 어디서 어떤 관계로 만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상식을 맞춰 가보면 좋겠네요. 고객님이 생각하는 상식과 제가 생각하는 상식의 선이 같아진다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많은 직원들이 좀 더 행복한 직장생활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문화센터는 앞으로도 항상 고객님의 편의와 보다 나은 서비스를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