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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야 Feb 28. 2020

붉은 벽돌집 비밀의 방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공간


내가 사는 동네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다세대 주택이 즐비한 곳이다.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그 집 같은 동네. 걷다 보면 쉽게 길을 잃는 동네. 나는 수많은 붉은 벽돌집 중 지금의 집에 첫눈에 반해 이사를 왔다.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초여름, 집 앞에 심어진 감나무 한 그루가 유난히 초록초록하니 생기 있어 보였다. 나무 한 그루가 뭐라고. 그 여린 나무가 서울살이에 지친 나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위로를 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3층짜리 다세대 주택 1.5층에 자리를 잡았다.


이사 온 지는 2년 9개월 정도 됐다. 1년 내지는 2년 계약으로 자주 이사를 해야 하는 서울 월세방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월세는 올리지 않을 테니, 오래만 살아다오.’ 마인드인 집주인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3년 가까이 월세 인상 없이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오래된 집이라 보일러를 새것으로 교체하거나, 아랫집에 물이 샌다고 해서 타일 공사를 하는 등의 번거로운 일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집이 좋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지냈던 집들은 드러누우면 세간살이가 몽땅 한눈에 들어오는, 집이라 하기에도 멋쩍은 원룸 방 한 칸이었다. 집이라기보단 임시거처처럼 느껴졌다. 휴일에 집에서 쉬는 시간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방이 따로 있는, 조금은 넓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 집은 방이 두 개에 생각보다 널찍한 거실 겸 부엌도 있다. 시세보다 방세가 저렴하기까지 했으니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사 온 뒤 가장 기뻤던 것은 덜컥 방이 두 개나 생긴 덕분에 작은 방을 ‘옷방’으로 쓸 수 있다는 거였다. 럭셔리하게는 ‘드레스룸’이라고 하나. 처음 이사 왔을 때 너무 들뜬 나머지 크기가 적당한 서랍장과 행거를 구매해 직접 조립하고 배치하면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예견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초심과는 상관없이 나의 드레스룸은 오래 지나지 않아 창고화 돼 버렸다.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이 다 옷방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옷, 가방, 철 지난 이불, 잡동사니를 담은 상자들뿐만 아니라 고장 난 캐리어, 크리스마스트리, 취미로 만들었던 레고 블록들, 전자기기 빈 박스와 짝 모를 전선들, 기념품과 선물 받았지만 사용하지 않은 것들… 그야말로 외면하고 싶은 온갖 것들이 들어가 있다. 행거에는 안 입는 옷들이 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고, 안쪽 서랍장 깊숙이 한 번 들어간 물건은 거의 봉인된 것처럼 다시 찾아지는 일이 없었다. 물욕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니멀 라이프로 나아가고픈 나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정리도 잘 안 되는데, 옷에 고양이 털이라도 묻으면 더 처치 곤란이 되기 때문에 옷방은 자연스럽게 ‘금묘의 구역’이 됐다. 그래서 옷방에 드나들 때는 재빠르게 문을 여닫는 버릇이 생겼다. 겨울에게 틈을 안 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에게 옷방은 이 집에서 유일하게 점령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인식된 듯하다. 물론 나에게도 옷방은 봉인된 비밀 구역처럼 여겨졌다. 항상 문을 꽉꽉 닫아놓기 때문에 마치 우리 집에 없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의 호기심은 마를 날이 없어서 옷방 문이라도 열리면 눈이 빠질 듯이 동그랗게 뜨고 안의 구조를 스캔하려는데 혈안이 된다. 옷방 문이 살짝 덜 닫히기라도 하면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정수리로 문틈을 비벼서 결국 열고 안에 들어간다. 집념이 아주 대단하다. 일단 들어가면 이곳저곳 헤집어 놓은 채 가장 깊숙하고 아늑한 곳에 웅크리고 있기 일쑤다. 숨바꼭질하듯이. 붙잡혀 나와도 겨울은 계속 시도했다.


옷방에 집착하는 겨울을 보면서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틈만 나면 옷장에 숨어서 숨바꼭질하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옷장이나 서랍장 안에서 발견됐던 순간을 말해주곤 한다. 엉덩이를 길게 빼고 엎드려 누운 채 잠들어있었다면서. 그럼 꼭 엄마는 엉덩이를 찰싹 때려서 날 깨웠다고 했다. 아마 어린 나에게 옷장 안을 독립적이고 안전한 공간이었던 것 같다. 고양이가 구석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서른의 나이만큼 컸고 독립된 집이 있다. 이제 정말 안전하게 숨을만한 공간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어릴 때 숨어들던 옷장보다 훨씬 큰 옷방도 있다. 어쩐지 몸집이 아주 큰 사람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이사도, 여행도 훌훌 잘 다녔는데. 가진 것들이 많아지니까 몸이 너무 무겁다. 다달이 내야 하는 월세도 너무 버겁다. 너무 커진 몸집 탓에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가 된 것 같을 때가 있다. 어깨 위엔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점점 늘기만 하고, 덜어지진 않는다.


왠지 더는 옷장(옷방)은 아늑하거나 편안한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적인 나의 삶을 고스란히 배열해 보여주는 것처럼 막막한 공간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바쁘게 살면서 미처 살피지 못한 것, 처치 곤란해 숨겨둔 것들이 그곳에 있다.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옷방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느껴질 때도 많다. 숨을 곳, 숨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니까.


이번에는 진짜 옷방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더 쌓아두다가는 옷방이란 공간 자체를 통째로 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집 안에 가장 구석진 곳이 없어질 거고, 겨울의 호기심은 멈출 거고, 숨고 싶은데 막상 숨고 싶은 곳이 사라진다는 건 왠지 좀 슬픈 일이니까. 나는 지난 것들, 처리되지 못하고 축적된 것들을 아쉬워 그대로 두는 건지, 그저 무신경하게 여겼던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려 한다. 봄이 오면 어두운 나의 옷방에도 볕이 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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