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읽고, 나를 쓰다

기억은 흐르고, 나는 적는다

by 유심희


"사진이 남는 거야."


게임으로 치면 사진을 찍는 것은 인생의 저장 버튼을 누르는 셈이다. 인생에서는 게임처럼 되돌리거나 다시 시작하는 기능은 없지만, 찍어둔 사진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그 때를 떠올려볼 수 있다.


사진 이외에도 인생의 저장 버튼은 많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냄새, 음악, 온도. 이들을 통해 잊고 지냈던 그 때의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성능 좋은 저장 버튼은 글로 적는 것인듯 싶다. 찰나의 순간을 담은 사진보다 연속적이고, 추상적인 감각 경험보다 구체적이라서 그러하다.

더 놀라운 건,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처 저장하지 못해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삶의 일부가, 우연히 읽은 누군가의 글로 인해 다시금 살아날 때 너무나 반갑고 고마웠다.


대신 글로 기억을 저장하는 일은, 사진 한 장을 찍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당시의 생각과 감정이 어떠했고 이를 담아낼 적절한 표현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정확하게 기록된 기억은, 먼 훗날의 내가 왜곡된 과거를 마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건 저장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글을 써보려는 것은, 새롭게 기억해야 할 것들에 밀려 시간 속에 흘러간 기억들이 아까워서이다.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어느 날의 소중한 마음, 앞으로의 나 자신을 이끌어주리라 확신했던 각오나 다짐 등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더 이상 떠내려 가지 않게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오늘, 이 글이 그 시작이다. '소중한 인생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각오를 20여 줄의 짧은 글로 표현하는 것에도 애를 먹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점처럼 하나하나 남길 나의 글들이 모이면, 언젠가 선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 선이, 내 인생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 왔는지를 먼 훗날의 나에게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