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는 악당이 아니다

나만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by 유심희

권선징악.


고전소설의 핵심이자 오래된 주제다. 지금도 어린이 만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늘 충분한 이유와 개연성을 갖고 행동한다. 반면 악당은 평면적인 인물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와 관점 속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무대다. 그렇다면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에서, 과연 누구를 악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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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일상에서는 작은 오해도 상대를 ‘악당’으로 만들곤 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단체 대화방에서 내 메시지에 답하지 않으면 “날 무시하나?” 하고 단정하기 쉽다. 사실은 바빠서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또 직장에서 동료가 내 의견에 반대하면 우리는 흔히 그를 “방해꾼”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 반대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한 조언일 수 있다. 내 감정만 기준으로 삼으면 상대의 이유를 보지 못하고, 그를 단순한 ‘악역’으로 몰아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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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과 집단의 관계에서


집단 간 갈등은 이런 현상을 더 크게 만든다. 정치 성향이 다른 집단은 서로의 주장을 검토하기보다 상대를 “나라를 망치는 세력”으로 규정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에 따라 행동한다. 학교 안에서도 비슷하다. 학급 대항전이나 동아리 경쟁에서 상대를 꼭 이겨야 할 ‘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곤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같은 학교, 같은 공동체의 학생이다. 집단적 시각에 매몰되면 서로가 서로를 악당으로 만들어 갈등만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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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앞의 상대는 악당이 아니다.


그는 단지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주인공일 뿐이다. 나 또한 내 세계에서는 주인공이지만, 더 큰 무대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구성원 중 하나다. 내 우물 안에서만 세상을 보면, 상대는 늘 적대적인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우물을 벗어나면, 우리는 모두 같은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개구리에 불과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정의와 공존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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