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이 되는 순간

달리기를 통해 되찾은 자신감과 자유

by 유심희

달리기.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배움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


2010년, 대구에서 열린 핑크리본 마라톤. 여성 유방암 치료를 돕기 위한 행사였다. 나는 10km 코스에 참가했다. 혼자였다면 중간에 그만 두었을 순간이 수없이 많았다. 친구 역시 마음속으로는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서로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에 조용히 스스로를 다잡았고, 그 시간들이 모여 결국 완주를 만들어냈다. 기록은 54분. 처음으로 10km를 쉼 없이 달려본 경험, 그리고 완주라는 성취가 안겨준 벅찬 기쁨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이 그토록 실감난 순간도 없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며 완주의 감격은 일상의 소음 속에 점점 희미해졌다. 주변에서 가끔 마라톤 이야기를 꺼낼 때만 잠시 기억을 꺼내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우연히 마라톤 영상을 추천했고, 잊고 있던 의지가 다시금 깨어났다.


9월, 바람이 선선해지고 하늘이 높아졌다. 짧아서 늘 아쉬운 가을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나는 아침마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루를 내 의지로 연다는 뿌듯함이 컸다. 늘 보던 풍경이지만, 이른 아침 발걸음 위에서 바라보면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해 달리는 시간이 주는 해방감은 오래된 권태를 걷어내고 다시금 열정을 불러왔다.


물론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서른 후반이 되니 체력은 줄고 체중은 늘어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찼다. 무릎과 허리, 발목은 금세 아팠다. 그래서 유튜브를 뒤져 달리는 요령을 배웠다. 허벅지를 높이 올리고, 발바닥은 중간부터 닿는 듯이, 시선은 멀리 낮은 곳을 향하고, 호흡은 짧게 두 번씩 마시고 내쉬는 법. 하나씩 시도하며 내 몸에 맞는 리듬을 찾아갔다. 그리고 조금씩,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직선에서는 달리고 곡선에서는 걸었다. 달려야 하는 구간이지만 걷고 싶었던 마음을 이겨냈을 때의 보람은 컸다. 달리는 구간이 조금씩 늘어나도 몸에 무리가 없을 때는, 체력이 늘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세와 호흡, 시선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목표한 거리를 달렸을 때, 마치 내 몸이 기계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듯한 만족감이 찾아왔다. 그 순간 나는 내 삶을 내가 조절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고, 스스로의 온전한 주인임을 느꼈다.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맡은 역할에 충실한 삶도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중함이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작게는 취미를 얻은 기쁨이었고, 크게는 어떤 일이든 계획하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새롭게 얻는 순간이었다.


이제 달리기는 성취를 좇는 일이 아니라, 일상을 조금 더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작은 습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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