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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희 Jan 27. 2024

혹시 부자가 못 되더라도

부자가 못 되면 불행할까?

어느 토요일 오전, 쌀떡을 사서 점심에 떡볶이를 해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을 나섭니다. 

집 앞에 가면 떡집이 있거든요. 떡집에 도착하니 문을 닫았습니다. 

아, 이 시간에 떡 사러 나온 게 처음이구나. 이 시간엔 떡집이 문을 안 여는구나. 이런 것도 미리 생각 못 하고 나온 나를 잠시 질책하다가, 다시 좀 더 걸어가 봅니다. 조금 더 가면 또 다른 떡집이 있는 게 생각났거든요. 

그런데, 그 집도 문을 닫았습니다. 음.. 어쩌지? 꼭 쌀 떡볶이를 먹고 싶은데.. 조금 더 걸어가 봅니다. 좀 멀지만 예전에 떡을 샀던 가게가 생각났어요. 가다 보니 떡볶이집도 보입니다. 안되면 만들어 놓은 거라도 사갈까? 하는 마음이 들지만 일단 나의 목표는 쌀떡을 사는 거라서 더 멀리 가봅니다. 가도 가도 떡집은 나오지 않아요.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들어 놓은 쌀떡볶이와 냉동 쌀떡을 사서는 집에 왔습니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먹다 남은 카레도 있고, 계란도 있어서 쌀떡으로 직접 만든 쌀떡볶이는 못 먹었지만, 나름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나의 쌀떡 찾기 여행은 "쌀떡을 샀느냐?"의 여부로 평가한다면 "실패"입니다. 하지만 쌀떡을 사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많은 가게들을 보았고, 걷기 운동도 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토요일 오전의 우리 집 근처에는 이런 이런 가게들이 문을 열고, 이런 가게들은 문을 닫는구나 하는 정보도 획득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처음 먹어보는 쌀떡볶이도 사봤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쌀떡 없이도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물론 쌀떡을 바로 사서 집에 왔으면, 처음 원했던 점심을 좀 더 빨리 먹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어차피 저녁 먹기 전까지 남은 시간에 또 다른 무언가를 원하면서 조금 더 긴 오후를 보냈겠죠.


"쌀떡 사기"라는 목표에만 집착해서 오후 내내 "난 쌀떡도 못 산 낙오자야"하면서 슬퍼한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웃음 사겠죠?


인생의 모든 목표가 이것과 뭐가 다를까요? "나는 ***대학에 갈 거야"라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과목, 싫어하는 과목도 알게 되죠. 또는 아예 "나는 공부가 안 맞는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물론 지금 한국 중고등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닐 수 있으므로, 그렇게 성급한 결론은 절대 내리지 말길 바랍니다). 

그래서 목표하는 대학에 못 가면, 그게 뭐 그리 큰 일입니까? 쌀떡을 못 사면 김밥을 사다 먹어도 되고, 만들어 놓은 떡볶이를 먹어도 되고 하는 것처럼 그 대학을 가는 것에 실패했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보면 됩니다. 

아마 쉽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그 대학에 가야만 그 이후의 인생이 준비된다고 생각하는 착각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세뇌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 "꼭~~ 이래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쌀떡이 없으면 밀가루떡 먹어도 되고, 가게가 모두 문 닫았으면 집에 와서 라면 끓여 먹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면 됩니다. 오히려 의외로 내 계획보다 더 멋진 길이 준비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돈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꼬마빌딩 주인이 될 거야" 또는 "부자가 될 거야"(매우 추상적이라서 좋은 목표는 아니지만..)라고 마음먹고 열심히 공부하고, 발품 팔고, 투자도 해보고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꼬마빌딩 말고도 내가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다른 투자처를 찾을 수도 있고, 실제 꼬마빌딩 주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꼬마빌딩 주인이 돼 보니 생각보다 안 좋을 수도 있고, 꼬마빌딩 주인은 못 되었지만, 나의 다른 재주로 돈을 벌게 되어 더 풍족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돈 버는 것보다 지출을 줄이는 삶에 더 매력을 느껴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여유 있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목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목표보다 더 본질적인 목표, 즉 삶의 가치를 충족시키는 창의적 대안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무목표가 쌀떡을 사는 것이라면, 삶의 목표는 점심을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점심을 맛있게 먹기 위해 쌀떡이 필요했는데, 쌀떡이 없이도 점심을 맛있게 먹는 법을 알아냈다면 재무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단에 집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수단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무엇을 내가 좋아하는지 그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다양한 수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아침에 눈을 떠 몸을 일으키고 움직이시나요? 맛있는 점심을 먹고자 했던 초심을 잃어버리고, 쌀떡에 집착해서 살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언제 행복했었는지 그 순간들을 떠올려보세요.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거 같이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평생 행복을 연구한 서은국 교수는 그의 저서 "행복의 근원"에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표현합니다. 쌀떡을 사게 되는 그 순간의 강한 성취감도 행복을 위해 필요하겠지만, 쌀떡을 사러 다니며 보고, 배우고 느끼는 소소한 순간들을 즐길 수 있는 삶이 더 많이 행복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쌀떡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쌀떡볶이가 또 먹고 싶어 지는 토요일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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