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 심어진 곳에 #속초

부담과 여행

by 유타에

2월 첫째 날.


온 세상이 전염병으로 고생을 시작한 지도 1년이 막 넘어간 때이다. 되도록 집안에서 지내야 했고 하필 이런 때에 누군가의 잘못과 엄마의 실수로 40만원짜리 월셋집에서 살게 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답답했다. 가족은 떨어져 있을수록 애틋해지는 거라고 누군가 그랬었나. 불편하기까지 한 그 말은 처절하게 진실이었다. 엄마와 하루종일 같은 방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무얼 먹는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까지 강제로 공유해야 하니 걱정은 더 이상 걱정이 아니게 되었고 참견은 집착이 되었다. 초등학생도 아닌 내가 엄마 몰래하는 방법을 생각하고있는게 비참하기까지 했고, 내 고통은 내 삐뚤어진 마음때문이라는 자기혐오에서 허우적대야 했다.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억지로 씹어 삼키고 엉망진창이었던 속을 달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바뀐 것은 없었다. 나는 고통에 쉽게 잠드는 법도 잊었다. 귀마개와 안대, 수면양말을 모두 갖춰야 잠들 수 있었고 하나라도 없으면 잠들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에 밤을 꼴딱 샜다. 저번 달 쯤부터 일주일 중 4일을 남자친구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귀마개 없이 잠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나의 불쌍한 고양이는 친구를 잃었다.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떠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겨울의 바닷가는 여름만큼 인기있지 않아서 충동에도 괜찮은 여행지였다. 엄마에게는 떠나기 전날 저녁까지 숨기다 짐을 싸며 통보했다. 당연히 좋은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네 밤이나 어디에서 자는지, 택시를 탈건지, 먹을 것은 충분한지, 꼭 혼자 가야 하는지 등의 것들을 알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내가 기대한 것도 '좋은 소리'는 아니었고 엄마가 궁금해하는 것들도 엄마만 모르면 되는 것들이었다. 아직 어둑한 아침에 겨울옷을 쑤셔 넣은 캐리어를 끌고 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올 때 여행의 설렘보다 야반도주하는 기분에 더 가까웠다.



속초에 왔다. 나에게는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먼 곳이었다. 사람이 많은 인기있는 숙소를 고를수도 있었지만 나는 극도로 혼자있고 싶었기 때문에 어느 카페에서 운영하는 에어비앤비 가장 안쪽 집을 골랐다. 요리도 할 수 있고 마당도 딸린 독채여서 더 마음에 들었다(하룻밤에 4만원밖에 안 하기도 하고). 카페 고객들도 이용하는 테이블이 있는 야외공간을 지나 계단 서너 개를 내려가면 내가 고른 집이 나온다. 도망자에게 꼭 맞는 깊숙한 곳 작은 시골집 같았다. 아직은 칙칙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화사해질 화단과 담벼락의 나무. 투박한 흰 벽과 둥근 창문. 외관에 어울리는 나무가구들과 베이지색 커튼으로 꾸며진 방에 2인용 식탁과 큰 침대, 넓고 깨끗한 화장실. 우리 집보다 확실히 근사했다. 엄마 몰래 사둔 냉동식품과 빵을 꺼내 냉장고에 정리해 두고 창틀에 책을 세워놓고 나니 오늘 할 일이 끝났다. 관광하기엔 나쁜 시기지만 어차피 나도 신나고 싶은 욕구는 없다.


혼자서 여행을 해본 적은 있지만 몇 밤이나 외지에서 보내는 건 처음이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불안에 눌려있다. 문이 잘 잠기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고 깜깜해지기 전에 침대로 돌아왔다. 전염된 불안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나는 항상 혼자 남겨지는 걸 두려워해야 했다.